발자국일기1

대학교 2학년의 흔한 생각

by 서리

제목을 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십 억 개의 족적 중 나의 족적을 어딘가에는 꼭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흐물흐물 사라져 버릴 아지랑이 같은 청춘이라, 그 청춘의 시작을 회상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나의 글이었으면 싶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주저함이 있었다. 무엇을 적어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고 나의 인생이 어딘가에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막연히 생각했다. 이름을 붙여본다면 두려움이나 막막함과 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세간에는 시작이라는 게 다들 중요하다기에,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글을 적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을 소소하지만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발자국과 걸음을 같이하는 나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나의 첫 발자국은 지나온 발자국의 소개가 되면 좋을 것이다. 지금 막 무언가를 하려 하는 이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그야말로 자칭이자 타칭 모범생이었다. 여러분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머리를 높게 묶고 왜인지 모를 금테 안경을 쓰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 그런 학생이 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안경의 종류가 금테이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공부가 적성에 그렇게 맞는 편은 아니었다. 꾸준히 기복 없이 공부하는 편은 아니었고, 활활 타올랐다가 갑자기 꺼져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오뚝이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왜 공부를 했는지 그 이유는 나조차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른들의 말을 너무나 귀담아 들었던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대학 이후의 삶을 나는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상상해 본 나의 미래는 '대학을 합격하는 순간'까지였고, 내가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시는 부모님의 말을 따라 적당히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중간에 진로를 바꾸려는 노력조차 한 적이 없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굉장히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20대 때 많이들 한다는 미팅, 과팅, MT 등등의 것들이 익숙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해본 적이 없으니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같이 또 학점만 따기 바빴다. 내가 해오던 것은 그런 것들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지도 않았다. 나는 어쨌거나 당연히 학교의 고시반에 들어가 행정고시를 공부하여 합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또다시 나는 관성처럼 내 인생의 끝을 그 '합격의 순간'이라고 막연히 정해놓고 2학년 2학기, 마침내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공강이든 아니든지 간에 9시까지 학교 자습실에 출석했고 밤 10시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런 하루를 학기와 병행하다 보니 지치는 일이 많았고 자연스레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과연 이 직업을 정말 가지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나?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 적이 있었나? 그리고 깨달았다. 아, 단언컨대 없었다. 자습실에 앉아 그 주위의 풍경을 휘이 돌아보았다. 양옆 시야가 가로막힌 주욱 늘어선 책상 앞에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주 작게 트인 창문과, 내가 방금까지 보고 있던 모의 시험지 그리고 지우개 가루, 특유의 자습실 공기와 어딘지 모를 기시감. 순간 섬찟했다. '나는 앞으로 최소 2년 간 이곳에 앉아 나의 열정을 토해내겠구나.' 하지만 그 열정이 도대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합격 이후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되면 좋겠지.'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일테니 말이다. 동시에 너무나 답답해서,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울고라도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일을 하든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일로 돈을 벌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웃긴 것이 막상 2~3년 간 그 좁은 공간에 틀어박힌다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들이 샘솟듯이 생각나더라.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참 많이도 싸웠다. 솔직히 지금의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아직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2학년 말미에 나는 조종키를 놓아버렸다. 내 곁의 파도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솔직히 조금은 막연하고 무섭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 행동이 무식한 회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막상 다시 공부하려니 힘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여유를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낼 수 있는 용기도 어쨌거나 가지게 되었다. 방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달갑지는 않지만, 그 간격이 주는 힘을 믿으며 무엇이라도 해보자. 오늘은 종강한 기념으로 혼자 광화문 근처에서 서점에 들러 경제학 책도 사 읽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작은 파우치도 골랐으며,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도 혼자 보고 왔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의 삶을 채워 넣고, 또한 기록하자.


나의 발자국이 어떤 궤적을 그려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어떤 궤적이 되었든, 오늘의 화창한 하늘 아래 경쾌한 발걸음처럼 주저하지 않기를!

오늘 보았던 광화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