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내는 브런치 편지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다. 누군가는 하루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돌아다니길 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모험을 즐긴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낭만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나는 여행에서 ‘여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놀멍쉬멍 여행자랄까. 하루에 1~2개 정도의 스팟만 방문하고 나머지 시간은 먹고 쉬는데 집중하기. 심지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 종일 호텔 침대에서 방콕 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보면 펄쩍 뛸 여행 스타일이지만 타고난 에너지가 워낙 적어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난 한 여행지에 오래오래 머무는 걸 좋아한다. 남들 2~3일 머물 곳에 5일을 머문다던지, 덕분에 호텔비가 좀 더 발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니까.
내가 사는 곳은 신도시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있는 나무들은 너무나도 어리다. 올망졸망한 동네 나무들은 거주민들에게 단 한 뼘의 그늘도 내어주지 못한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걷다 보면 이 작디작은 나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인지 옥스퍼드 여기저기에 있는 큼직한 나무들을 보기만 해도 시원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이 나무들은 이 땅에서 얼마나 머물렀을까란 의문이 든다. 고려시대쯤에 이 도시가 생겼다고 하니 나무들의 나이도 대충 그 정도 먹지 않았을까.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머무는 기분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한 지역에서도 아주심기를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아왔던 나는 이 기분을 잘 알지 못한다.
이런 궁금증이 생긴 이래로 큰 나무만 보면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 나무 밑에 들어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끝없이 뻗어 올라가는 나무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큰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나무들의 이런 모습을 닮고 싶어졌다.
한 곳에 뿌리내려 천년 이상을 살아가는 것.
처음엔 여리여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테가 두터워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것.
나도 지금은 밴댕이 속알딱지지만 더 나이 먹으면 그만큼 마음의 품도 나이테가 늘어난 만큼 커져있겠지.
그래서 난 오늘도 한 장소에서 지겹도록 머물며 감상하고 향유한다.
오늘의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미술사 박물관. 수만 개의 그림들에 파묻혀 그림이 주는 감동의 물결에 내 몸을 맡기는 중이다.
옥스퍼드 유랑 역시 마찬가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내가 삶을 꾸렸던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이다. 이곳에서 남은 시간 동안 매일 가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읽고, 내가 즐겨가는 단골 식당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고, 내가 사랑하는 길을 매일매일 걸으며 이 땅의 작은 나무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내 마음속 나무도 옥스퍼드의 울창한 나무처럼 드넓고 푸르게 자라겠지. 그런 큰 나무가 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옥스퍼드의 하루를 오늘도 알차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