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의 묵은 때를 밀어버리는 시간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니 그동안 묵은 공기가 내 코를 간지럽힌다. 거실과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습하지만 초록빛의 개운한 공기가 우리 집에 쑥 들어왔다.
이 기세를 몰아 청소를 하고 짐을 풀고 하고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비행기에선 단 한순간도 잠들지 못했던지라 무려 이틀간 기나긴 여름잠을 자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내일이면 출근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말을 마무리할 순 없다.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내 머릿속엔 '세신'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 전차로 난 이 한여름에 세신을 받으러 먼 길을 나섰다. 기왕 받는거 마사지까지 받아야지 생각하면서.
어릴 때 나에게 목욕탕이란 '수영장'이었다.
온탕, 냉탕을 넘나들며 화려한 개헤엄을 즐기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얻어맞으며 때를 밀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목욕탕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사실 새벽 시간을 틈타 가본 적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꼭 아는 아줌마들을 만나서 가뜩이나 몸매 부끄러운 나를 더 움츠려 들게 만들었었다. 게다가 새벽인데도 불구 탕 안에 둥둥 떠다니는 메밀국수들까지... 윽!
나와 상당히 멀게만 느껴졌던 목욕탕을 다시 가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이 역병은 몇몇 신생사업을 만들어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1인 세신샵'이었다. 한 타임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고 한 공간에 오롯이 나 혼자만 독점할 수 있는 구조. 여전히 목욕탕이 부끄러운 나에겐 정말 딱인 목욕탕이었다. 물론 일반 찜질방이나 목욕탕보다 이용료가 비싼 느낌도 있었지만 늘 깨끗한 물과 나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부끄럽지 않은 공간을 생각하면 그 이용료조차 나에겐 Free였다.
거의 10여 년 만에 타인에게 몸을 맡기는지라 처음엔 좀 버벅거렸으나 이젠 세신사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착착 포지션을 바꾸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거기에 오일마사지 팡팡 시간을 갖자면 웬만한 호텔 에스테틱보다 가성비 좋은 에스테틱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세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이 이렇게 가뿐할 수 없다.
지난 한 달간의 여행은 내 머릿속의 잡념을 없애는데 참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몸의 피로는 하루하루 쌓여만 갔었다. 이런 내 몸에 세신이란 마법을 부리니 지난 시간 쌓였던 몸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체중도 이렇게 내려가면 참 좋으련만, 그것만큼은 before, after가 똑같다.)
몸과 마음이 모두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니 앞으로 다가올 나의 미래도 지난봄, 여름보다는 가볍고 산뜻하길 바라본다. 세신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