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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존밀크 Aug 08. 2024

수인로 1824

     




 내비게이션에 수인로 1824를 검색한 후 운행을 시작했다. 날씨가 흐릿한 것이 영 불안했는데 역시나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100km로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눈을 맞고 있자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설상가상으로 깜빡이 무옵션 차들의 칼치기가 시작된다. 톨게이트 출구를 통과하려 하는 순간 내 앞에서 역주행하는 자동차까지, 아주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치지 않고 무사히 수인로 1824에 도착했다. 내 운전 솜씨가 좋아서일까?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난 알고 있다. 수인로 1824에서 쉬고 있는 한 영가가 날 이곳으로 무사히 이끌어줬음을.



 언니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나와는 다르게 매사 적극적이었고 공부를 아주 잘했으며 친구도 매우 많았다. 반면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나는 언니에 대한 열등감을 무럭무럭 키워가며 뭔가 어설픈 어른으로 자랐다. 언니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멋진 어른으로 자랐다.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했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적당한 나이에 멋진 남자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하고,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임신 및 출산을 했다. 첫 아이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 둘째도 임신했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부족한 것 없는 삶. 하지만 그 삶은 2018년 11월 마지막 순간에 끝났다.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참담한 슬픔 앞에서는 그 어떤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자식을 잃고, 아내를 잃고, 엄마를 잃은 슬픔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막 돌잔치를 끝낸 조카는 3일 밤낮을 울었다. 저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우리는 함께 울었다.



 비워진 자리에 남은 상처가 지혈되지도 않았는데 별일 없었던 사람처럼 일상 속으로 끌려 나왔다. 몸과 정신은 닳아갔지만 슬프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자격이 나에겐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니 비워진 자리에 굳은살이 생긴 것 같지만 매년 11월이 다가오면 땅끝까지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언니가 잠들어 있는 수인로 1824로 간다. 언니 생전에는 전화도 하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었는데 사후에 이렇게 주기적으로 찾아가고 있자니 참 위선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행위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언니와 나를 위한 최선의 위로이자 반성이다.

   


 이번 방문에는 혼자가 아닌 온 친척이 다 같이 왔다. 언니에게 함께 인사하고 갈빗집에 갔다. 언니의 남편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 속에서 하하호호 웃었다. 밥 먹다가 갑자기 갈빗집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있는 언니의 아들은 언니처럼 씩씩하고 귀엽게 자랐다. 그 작던 아기를 온 마을이 이렇게까지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력이 필요했을지 이 세상은 알까?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의 만남을 찬찬히 돌아봤다. 언니의 죽음은 우리 가족 전체에게 큰 슬픔일 것이고 그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럼 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먼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난 언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내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기 낳으면 연락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연락을 미뤘다. 그 뒤 난 언니에게 다시는 연락할 수 없었다. 이젠 진짜 고마울 때라도, 아니면 정말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라도 특정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연락해서 안부를 나누고 싶다. 특히 조카에게는 가끔 선물도 사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이모가 되고 싶다. 만날 때마다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별일 없는 삶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면서 몇 번의 황망한 죽음을 지켜보니 아침에 별 일없이 일어나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가,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잠드는 인생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새삼 알게 된다. 화려한 이벤트 없이 잔잔한 호수와 같은 삶이 때로는 지루하지만 그런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일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도 언젠가 수인로 1824에 잠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두 팔을 벌리고 나에게 달려올 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해 오늘의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내게 주어진 삶의 길을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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