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내 얘기는 없어?
이 소리는 남편이 어느 서적에 담겨 있는 나의 글을 읽고 제일 먼저 한 소리다. 이후 글을 읽고 감동했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 소감의 끝맺음은 또 왜 본인 이야기가 없냐는 것이었다.
뚱딴지같은 남편의 반응에 웃음이 나긴 했으나 덕분에 남편과의 추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오늘이 크리스마스이지 않겠는가, 날도 날이니 만큼 남편과 관련된 글을 한번 작성해보고자 한다.
나와 남편은 결혼 이후 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많다. 심지어 비행기로 13시간 이상 걸리는 땅에 서로 떨어져 살고 있다. 이런 나를 보고 결혼해도 자유로워서 좋겠다, 혹은 부부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도 우리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모르겠다. 결혼했는데 기약 없이 따로 살아야 하는 이 팔자가 나도 기가 막히다.
결혼해서 자유롭겠다는 이야기에 관해선 할 말이 많다. 나의 우울증을 증폭시키는 라이프 스타일이 바로 이 자유로운 삶이다. 남편이 없는 자유로운 삶이 시작되기 시작하면 우리 집엔 어둠만 가득하다. 밝은 빛을 좋아하는 남편이 없으니 불을 켤 이유도, 커튼을 열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저 침대 옆에 있는 작은 불만 겨우 켜놓고 누워있을 뿐이다.
겨울이 시작되어도 절대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여름엔 에어컨을 팡팡 틀어대는 편인데 보일러만큼은 예외이다. 그렇다고 내가 추위를 안 타느냐, 그것도 아니다. 수족냉증이 있기 때문에 손과 발은 사시사철 얼음장이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이불 안에 기어 들어가 통조림 속 물고기처럼 웅크리고 있어도 보일러만큼은 절대 틀지 않는다.
이렇게 궁상을 떠는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다. 집에 나 혼자 있는데 굳이 보일러를 틀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게 내 결론이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위아랫집 사시는 분들이 보일러를 돌리시니 덕분에 그 열기를 나눠 받기도 하고?
하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편을 공항으로 픽업 가기 직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보일러 켜기다. 오랜만에 한국땅에 돌아오는 남편이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 훈훈한 온기가 그를 환영해 주길 바란다. 따스함 가득한 집에서 갓 지은 밥을 함께 먹으며 그동안 서로 어찌 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아내인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랑 표현 중 하나다.
현재 남편이 잠시 한국에 있는 관계로 우리 집은 따스하다. 그리고 햇빛이 거실에 가득 차있다. 그가 지금 내 곁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한 낮인데도 한밤처럼 어둑어둑했을 것이고 집 안 전체에는 냉기만 가득 찼겠지. 아마 남편이 내 삶에 없었더라면 난 평생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전차로 남편은 나의 보일러다. 차가운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햇살을 비춰주는 사람. 생김새가 어쩐지 곤충을 닮았으니 귀뚜라미 보일러라고 하자. 나의 보일러,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