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존밀크 Jul 26. 2024

우리 집 밥상 위 이탈리아, 피자부침개

그 피자부침개는 엄마의 사랑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다.



2년 전쯤, 몇몇 분들과 함께 추억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은 고추장물, 꽈리고추찜, 푹 지진 김치 등 굉장히 토속적인 음식들에 대한 추억을 공유했다. 하지만 난 그런 음식들에는 통 추억이 없다. 우리 엄마는 그런 음식을 전혀 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경기도 안양에서 성장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엄마에게 시골 밥상을 차려주셨던 것 같지만 엄마는 나에게 그러지 못했었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와 함께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이다. 아침은 매일 간장 계란밥을 먹었었고, 심지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엔 아침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점심은 참치통조림, 김치, 김 정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중간중간 끼니는 과자와 같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웠다.



당시 우리 부모님의 가게는 밤 10시 정도에 문을 닫았었는데 덕분에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은 늘 밤 10시였다. 문제는 저녁밥으로 거의 매일 삼겹살을 먹었던 부분이다. 당시의 나는 우리 가족이 고기를 워낙 좋아하니까 이렇게 먹는가 보다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내가 성인이 되어 일하면서 밥상을 차려보니 삼겹살만큼 차리기 쉬운 메뉴가 없다. 고기만 구우면 나머지 반찬은 냉장고에 있는 푸성귀나 쌈장, 김치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마다 삼겹살을 먹은 대가로 나와 내 동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푸짐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를 탓하진 않는다. 엄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밥상이었다.



지금이야 마켓컬리, 쿠팡, 배달의 민족 등으로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는 밀키트, 반찬 등을 바로 공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살림하던 때는 결코 그럴 수 없던 시대였다. 엄마는 내가 잊을만하면 좁은 주방에서 사골곰탕을 폭폭 끓이셨고 우리 동네 작은 서점에서 백과사전만 한 요리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셨다. 애석하게도 그 요리책에 있는 메뉴를 내가 먹어본 적은 없다. 그런 요리책에 있는 요리는 기본적으로 오븐이 필요한데 미천한 우리 집엔 오븐과 같은 귀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요리책을 펼쳐보며 쿠키를 오븐에 구워 먹는 상상을 종종 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쿠키를 만들자고 마구 졸랐다. 엄마는 고민 끝에 그 쿠키를 무려 가스레인지에 올린 프라이팬에 구워서 주셨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주신 그 쿠키는 바삭함은 전혀 없는 일종의 팬케이크 같은 음식이었다. 그래도 그 흐물거리는 쿠키를 먹으며 너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의 반응이 엄마에게는 일종의 행복이었을까, 엄마는 그 이후 엄청난 도전을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무렵,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피자가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얼리어답터였던 우리 엄마는 나와 내 동생에게 그 피자를 엄청 사다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퍽퍽하고 맛없는 피자였지만 당시엔 나름 맛있게 먹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동네에 피자집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슈퍼마켓에서 파는 피자는 먹지 않고 동네 피자집 피자를 ‘간식’으로 먹어대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당시에 피자 레귤러 사이즈 한 판을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먹성을 자랑했다. 우리 집이 그렇게 잘 사는 집도 아닌데 매일 그렇게 피자를 먹어대는 자식이 있으니 가정에 참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나와 내 동생에게 피자를 손수 만들어주시겠다고 선언했다. 요리책에서 봤냐고 여쭤보니 옆집 아줌마에게 레시피를 전수받았다고 하셨다. 그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1. 밀가루 반죽을 기름 두른 팬에 지진다.

2. 그 밀가루 지짐 위에 케첩을 뿌린다.

3. 그 위에 각종 볶은 야채, 소시지를 토핑 한다.

4. 마지막으로 모차렐라 치즈를 잔뜩 뿌린 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이게 무슨 정체불명 음식일까, 이 정도면 피자가 아니라 피자부침개인 거 같은데, 하지만 어린 나와 내 동생은 이걸 처음 먹은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밀가루 맛이 엄청 나는 도우 위에 있는 야채, 햄, 치즈의 조화가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먹다가 느끼해질 때쯤 혀끝에서 느껴지는 케첩의 산미가 느끼함을 싸악 잡아줬다. 그래서 나와 내 동생은 그 피자부침개를 끝도 없이 먹었고, 손이 무진장 큰 우리 엄마는 밀가루 부침개와 각종 볶은 야채 토핑을 냉동실에 그득그득 재워두셨다. 덕분에 나와 내 동생은 매일 그 피자부침개를 해 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입맛만 고급이 되어 버린 불효자들은 이 음식을 등한시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이 피자부침개는 우리 집 밥상 위에서 퇴출되었다.



최근 들어 이 피자부침개 맛이 내 머릿속에 그려질 때가 있다. 나만 그런가 해서 가족 모임 때, 내 동생에게 이 음식 이야기를 하니 엄청 반가워하며 그때 너무 맛있었다고 호응했다. 그런 나와 내 동생의 반응을 보고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당시 고생한 보람을 이제야 느끼신 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나는 엄마와 함께 동네 피자를 함께 나눠 먹은 기억이 없다. 일 하시느라 드실 짬도 없었겠지만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보단 자식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게 훨씬 기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비싼 피자를 매일 먹일 순 없으니 눈으로만 구경해 본 피자를 구전으로 들은 레시피로 창조해 버린 것이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그럴싸한 피자부침개가 만들어졌을 때 우리 엄마는 얼마나 기쁘셨을까, 자식들이 행복해하며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참 설레셨을 것 같다. 그때의 엄마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 피자부침개를 오래오래 먹었을 텐데... 괜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는 이 음식을 보고 괴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 피자부침개 덕에 나는 매일같이 우리 집 밥상 위에서 이탈리아를 맛봤다. 엄마의 사랑이자 행복이었던 피자부침개, 오랜만에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일단 엄마 얼굴을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