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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May 06. 2021

밤의 인센스

레인 포레스트를 곁들인 너저분한 일기



심란한 밤이면 H 제주도에서 사다  인센스를 종종 태운다. 경우에 따라 피운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만  냄새가   너머 거실까지 흘러갈 때면 엄마는 향이 인체에 해롭다는 말에 종교적 이유까지 들어가며 분위기  내려는 나를 방해했다. 요즘 들어 태우는 날이 간간이 늘어나니 마음이 불편하거나 생각이 많아질  꺼내는  엄마도 아는지, 괜찮다는 말을 끝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오면 잔소리를 멈춘다.



흡연자가 아닌데도 더러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인센스는 그 역할을 얼추 비슷하게 해 준다. 이 역시 내 느낌일지 모르지만 아빠가 태우던 담배 냄새는 가까이 가기도 싫을 만큼 지독해 차가운 공기만이 머무는 겨울에만 좋았는데, 아무튼 나는 유독 비가 올 때 특유의 탄내를 찾곤 한다.



이름마저 레인 포레스트. 비와 숲을 좋아하는 내게 이만큼 낭만적인 향이 또 있을까 싶은 걸 보니, H는 역시 나를 잘 안다. 비에 적당히 젖은 풀이 앓는 듯 타는 냄새가 난다. 꺼져가는 불씨가 소멸만은 막아내기 위해 제 몸의 불을 끄려 눈물을 흘리는 느낌 엇비슷한 그 향이 젖힌 커튼과 반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순간, 그녀의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정말로 없어? 그러게. 나는 왜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까. 글쎄. 죽음을 목전에 둘만큼 살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나. 아니면 내가 가까이서 지켜본 죽음을 보아하니, 죽음만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심오한 환상 같은 게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나. 아마 내가 죽을 고비까지 가볼 만큼 수많은 위기들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동안에도 죽음이란 두 글자는 내가 살고 싶은 이유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풀이 죽었던 것 같다.



당시 그 물음에는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신이 나를 낭떠러지 코앞까지 내던졌다가 떨어지지 않을 묘책을 하나씩 던져주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이상하게 오기를 불러일으켜 산다고 했다. 센 척이 좀 섞인 대답이었다. 실은 너무 힘들어도 살고 싶은 욕망이 언제나 나를 일으켰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얼굴들이 여전히 너무 선명해서, 내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지 고작 몇 개월 째라, 아직 마셔보지 못한 커피와 술이 너무 많아서. 다른 데 안 쓰고 꼬박꼬박 사 모아둔 책들이 책장에 즐비해 있어서, 내내 기다렸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아른거려서. 그러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만은 아니었구나를 깨닫고는 감정이 금방 시들해졌다. 살아서 굳이 죽음 뒤의 삶이 또 있을지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 아직은 죽음으로 얻는 것들보다 살아있음으로 얻는 것들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어쩌면 H가 건넨 인센스가 나를 붙잡아둘 작정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술이 좀 고팠고 나름대로 외로웠다. 매년 내 몫의 할당량처럼 타야만 하는 외로움은 봄이라는 계절 안에만 있었기에 그 외에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으레 타 왔던 봄을 원인으로 두기에는 조금 복합적이다.



인센스를 절반으로 끊어 반만 태웠는데 모자란 느낌이다. 사적인 글을 쓸 때만큼은 '멜랑꼴리 한 클래식'이라는 플레이 리스트를 즐겨 듣는 편인데, 시간이 시간인 지라 스피커 볼륨을 낮추고 남겨둔 인센스 반을 마저 다 태우고 자야겠다. 요새는 내 강아지 라떼가 옆에서 자고 있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 늘 그렇듯 깨어있어 긴 새벽에는 고픈 배가 자연스레 아침 메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살고 있어서 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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