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총사의 역사
초등학교 때 나는 6총사의 일원이었다.
흡사 조직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6총사란 명칭은 사실 별 의미 없었다. 당시 여섯 명의 여자 일원으로 구성된 그룹이었기 때문에 짓게 되었고 그래서 다소 열악한 근거가 바탕이 된 간단명료한 네임이었다. 일원 대부분의 키가 후반대에 속한다는 연유로 또래보다 조금 성숙한 느낌이 있었던 우리는 6명이 합체하듯 종종 그렇게 모여 쏘다녔다.
대장 느낌의 씩씩하고 유쾌했던 1호, 스마트하고 성숙해 언니 같았던 2호, 밝고 명랑하며 곱슬머리가 귀여웠던 3호, 웃는 게 예쁘고 늘씬해 운동 잘 하는 언니 느낌을 주었던 4호, 어리바리하지만 귀엽고 서글서글한 5호, 본래 털털한 성격이나 폐쇄적인 성향에 무표정한 얼굴로 깍쟁이 같다 오해받던 나.
한 번은, 각자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을 두고 로맨스 소설을 쓰다 담임 선생님께 딱 걸렸다. 그때 나는 한창 잘 나가던 가수 UN의 한 남성을 좋아했는데, 주로 그 분과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 아마도 우리는 당시 굉장한 인기를 누리던 보이 그룹 몇 명과의 달달한 로맨스를 꿈꿨던 것 같다. 나는 양심상 소설을 써도 다른 과목보다는 국어 시간에 쓰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돌려쓰던 로맨스 소설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짝꿍은 내가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반에서 제일가는 일름보였음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후덜덜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가장 중대한 부분을 쓰는 순간이었다. 진도가 어디쯤 나갔는지, 선생님이 가까이 오는지도 모르는 채로 샤프심이 끊어질 때마다 신경질 적으로 샤프 끝을 눌러대는 나를 지나치던 선생님이 걸음을 멈춰 섰다. 망했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던지며 벌떡 일어선 나는 어쩌다 보니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중대한 그 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뒤 내 손에 하얀 수국 다발을 안겨주
며 말했다.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어 줄래?"
붉게 물든 창피함을 가리려 노트를 펼쳐 얼굴에 가져다 대던 나, 그리고 앉아서 '우리'의 소설을 대표로 읽게 된 나를 애달프게 바라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다섯 명의 저자들. 우리는 꺅-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담임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며 소리 내어 웃으셨고 우리는 한동안 그 소설을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건 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6총사 중 한 명에게 찐남친이 생겼다. 소설 속 연애에서 벗어나 진짜 연애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꽃보다 남자의 한 신처럼 그 친구를 6총사에서 제명시켜야 하는 건지, 그녀의 자유로운 연애를 허락해야 하는 건지 안건 심판을 위해 날을 잡고 장소로 모였다. 장소는 언제나 그랬듯 운동장 스탠드, 문제의 그녀를 기다리던 5명의 일원은 그녀가 오기 전 먼저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사실 그녀가 어떤 놈을 만나는지가 중요했을 뿐이지,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고 말고의 본질 자체를 따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생긴 첫 남자 친구였기에 축하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개중 몇몇은 6총사에게는 남자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둥, 상대의 그놈이 바람둥이라는 썰이 진실이라는 둥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해 당최 결론이 나지 않을 것처럼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해가 질 즈음, 문제의 그녀가 스탠드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게 보였고 우리 모두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대의 소문을 맹신하던 1호는 그 바람둥이 때문에 우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노발대발했고, 2호는 노발대발하던 1호를 슬쩍 꼬집으며 괜찮다고 무슨 일이냐고 차분하게 물었다. 뒤에 있던 3호는 그녀를 있는 힘껏 껴안으며 달래주었고 5호는 4호 눈에서 눈물이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옆에 있던 나와 연신 눈을 마주쳤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헤어진 거냐고 물었다. 우선은 떠보기 위함이었다. 엄마 차를 타고 뒤늦게 도착한 정황과 남자 친구에 대한 물음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낌새를 보아하니, 그 아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나마 그보다 더한 게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4호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 못 가 1호가 다시 노발대발하며 물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우는 거냐고. 그놈 때문이 아니면 누구 때문이냐고. 4호는 울음을 그치며 그 남자애와는 헤어진 게 맞다고, 자기가 그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했고 2호와 나는 4호가 말을 이어갈 때까지 그녀를 토닥이며 기다렸다. 곧이어 4호가 다시 운을 떼었다. 자기가 곧 다른 동네로 이사 갈 것 같다고. 그래서 그에게도 헤어지자고 했다고. 우리는 4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동장 흙바닥에 주저앉아 너 나 할 것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말은 안 했다만 4호의 첫 연애가 일주일도 못 간 것이 못내 아쉬워 씁쓸하게도 느껴졌다.
남자 친구라는 존재는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6총사의 역사는 끝나는 거냐고. 중학교 가려면 적어도 1년은 남았는데, 그럼 5총사가 돼버리는 거냐고. 심지어 5총사는 이름도 안 예쁘다고. 모두가 복합적인 마음으로 울다가 웃고 또 웃다가 울었다.
하교시간이 되면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일원이 다 모일 때까지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며 문구점 불량식품을 쩝쩝대던 우리. 서로의 집에 놀러 가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학습지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면 서로의 학습지를 어디에 숨길지 고민하고, 피구 동아리를 만들어 사이좋게 서로의 선을 넘나들며 공을 주고받던 우리. 자연스레 일기를 공유하고 상대의 일기 속 주, 조연으로 자주 출연하던 우리.
모든 날의 우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4호가 다른 동네로 전학을 가게 됨으로써 매일같이 만나던 횟수는 줄어들었으나 우리는 주말마다 캔모아에 가서 눈꽃빙수를 먹었고 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격주로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자연스레 각자의 삶에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었다. 모두가 만나 웃으며 졸업식 사진을 박은 이후 대부분 다른 중학교로 배정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각자의 핸드폰이 생길 시점 싸이월드와 버디버디로 연락을 이어갔다. 그때조차 우리는 헤어짐에 익숙지 못해 중학교 등교 첫날부터 하교 이후, 각자 다른 교복을 입은 채 놀이터에 모였다. 어느 학교 교복이 제일 예쁜지,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어떤지 계속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지만 몸이 멀어지고 나니 마음도 점차 멀어지는 것이 당연했고 차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중 두어 명만이 내 카톡 명단에 있고 사진이 바뀔 때마다 옆에 뜨는 빨간 점을 통해 그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한 친구도 있겠고 더러는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프로필 옆 빨간 점이 뜰 때마다 친구들의 안위를 돌아보지만 어찌 됐든 피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은 직접적인 연락은 피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멀리서나마 그 친구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기도할 뿐인 지금의 무덤덤함이 외려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멀리서 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 모르겠다만, 그 나이의 몫인 양 자신이 가진 직함에 어울리게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그들의 인생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더군다나 내가 힘들고 지칠 때는 그 생각이 수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때를 곱씹어 보며 그들을 기록하게 되는 일이 잦아진 내가 어쩌면 다섯 명의 친구들보다는 추억에 더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것만큼은 내게 주어진 행운이겠거니 생각해본다. 해가 갈수록 곁에 머무는 이들의 수가 줄어들지만 반대로 그 적은 사람들과 지내온 숙성된 시간이 늘어남에 깊은 위안을 얻는다. 뭐가 됐든 어차피 나는 폐쇄적일 테니까, 되도록 가까운 내 사람들만은 오래도록 보고 싶다. 어쩐지 프로필 옆 빨간 점은 여러 의미로 내게 낯선 안도감을 준다.
그때 집필 중이던 '우리'의 소설은 누구에게 가 있을까. 이따금 그 소설의 행방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