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내 모습
발리에서 한 달을 보내고 돌아와 느낀 것들을 수첩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 발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건 ‘나를 체험하자’는 결심에서였다. 최대한 낯선 환경에 나를 놓고 관찰해보고 싶었다. 발리라는 장소만으로도 충분히 낯설었지만, 일부러 핸드폰을 거의 쓰지 않거나 바쁘게 생활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에게만 집중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간 한 달이었다. 평소 안정을 최우선시한다고 생각했는데 발리에서 내가 수많은 도전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물 공포증을 스스로 극복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또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발리에서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관계 맺기를 주저했던 것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 없이 지내 온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에서의 알게 된 새로운 나의 모습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외국 생활에 자신감도 생기고 도전정신도 불타올라 귀국 후 곧바로 홍콩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교환학생 반년은 여행과는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었다. 발리에 이어 홍콩에서도 외국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흥미를 느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는 반대로 한국으로 온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소통하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렇게 여러 상황을 맞닥뜨리다 보니 오랫동안 고민하던 진로도 금세 결정하고 이중전공(복수전공)도 선택할 수 있었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발리 여행 경험은 남은 대학생활 2년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항상 ‘나는 해낼 수 있어’하는 자신감으로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내 환경은 내 생각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덕분이다. 발리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나 발리에서 느꼈던 행복했던 기분도 늘 내게 응원이 되어주었다.
발리에서 한 달 산 적이 있다고 하면, “한 달 동안 뭐 했어요?"하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딱히 별 거 안 했어요"다. 한 달 중에 절반 정도는 흘러가는 대로 지냈기 때문에 남들에게 여행담을 줄줄 늘어놓을 만큼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은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기뻐하는지, 슬플 때는 어떻게 스스로 위로해야 하는지 안다.
시작은 조금 무모했을지 몰라도 결국 나를 비워낸 만큼 채워 온 여행이었다. ‘대 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들 슬럼프를 겪는 대학교 2학년 때,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다 홧김에 비행기 티켓을 산 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