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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Apr 18. 2019

8 뜨지 못한다면 차라리 가라앉자

물 공포증 정면 돌파하기

우붓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뒤로하고 가장 유명한 관광지 꾸따(Kuta)로 넘어갔다. 꾸따는 발리섬의 남서쪽 해안을 끼고 있는 대도시 지역이다. 꾸따 비치(Kuta Beach)의 파도는 서핑에 적절해서 많은 서퍼들이 찾아온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꾸따에 잡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리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꾸따 비치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이제 막 서핑을 끝낸 듯 보이는 사람들을 숙소 바로 앞 골목에서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었다.


꾸따 비치의 파도는 서핑에 매우 적절하다.


땀을 식힌 후 바로 꾸따 비치로 산책을 나갔다. 사람들이 서핑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산책이 얼마나 큰 사건으로 이어질지 생각도 못했다. 꾸따 비치에 도착해 파도 위에서 춤을 추듯 서핑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뜨거워졌다. “와, 나도 하고 싶다!" 입 밖으로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내가 말하고 나서도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나는 사실 물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9살 때 발이 닿지 않던 계곡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던 사건 이후로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물에만 들어가면 몸이 경직되는 탓에 수영장에서는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물 색깔이 짙은 바다는 더욱 무서워했다. 이런 내가 갑자기 해상레저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우붓에서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경험했던 탓인지, 도전 정신이 불타올랐다. 내일 레저 업체를 알아보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꾸따 숙소 앞 골목. 건너편에 작은 타투샵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의 타투 샵에서 일하는 타투이스트를 마주쳤다. 낮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부터 반갑게 인사를 해주던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가 말을 걸었다. “내일은 뭐 할 생각이야?" 나는 신이 나서 조금 전 세운 계획을 얘기했다. “나 해상레저 업체 알아볼 거야. 물 공포증을 극복해보려고." 그는 방긋 웃으며 스쿠버다이빙을 추천했다. 물과 친해지는 데에는 스쿠버다이빙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에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데 무슨 스쿠버다이빙...’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과 동시에 ‘뜨지 못한다면 차라리 가라앉으면 되지!’하는 기상천외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즉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내 결심을 들은 그는 자기 삼촌이 스쿠버다이빙 강사라며 연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우연이? 곧바로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을 실천했다. 그에게 내 이름과 번호를 적어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꾸따에서 본 첫 노을.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보다가 돌아왔다.


나는 누워서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내 마음에 무슨 변화가 생겼기에 이렇게 큰 용기를 내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게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용기는 학교에서의 건조한 일상에서 빠져나와 약 열흘 동안 마음을 이완시켜 얻은 큰 성과였다. 물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나는 마음속 구석의 어떤 벽을 깨부순 듯이 속 시원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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