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후 실천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스쿠버다이빙의 5단계 자격증 중 가장 첫 단계인 ‘오픈워터(Open Water)’를 취득하기로 했다. ‘오픈워터’ 취득 절차는 총 3일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날은 이론과 수영장 실습, 나머지 이틀은 바다 다이빙 실습이다. 타투이스트는 자신의 삼촌에게 강습을 받으면 190달러에 계약하도록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발품을 팔아 다른 업체를 알아보아도 그렇게 싼 가격을 부르는 곳은 없어서 흔쾌히 타투이스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나의 강습을 책임질 강사 잭을 만났다. 파도 그림이 가득 그려진 승합차를 타고 등장한 그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검게 그을렸지만 근육으로 무장된 그의 팔다리는 그가 다이빙을 해온 세월을 짐작케 했다. 잭은 자신의 조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타투이스트가 잭에게 연결해준 관광객이 지금까지 꽤 많았다고 한다.
꾸따 비치(Kuta Beach)에서 발품을 팔아 다른 업체의 강습료를 알아보았다. 식사도 거의 다 해변가 식당에서 해결했다.
화려한 잭의 차에 올라 이론 교육과 수영장 실습을 위해 출발했다. 부르릉거리는 차의 엔진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내 인생의 엄청난 도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심장이 두근거려 나도 모르게 수영복 가방을 품에 꼭 안았다. ‘괜히 한다고 했나’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창밖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발리 여행이 온 덕분에 매일 새로운 날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쿠터 운전, 즉흥 관광, 플라잉 요가,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까지. 이번 여행이 어쩌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킬 계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쿠버다이빙이야 말로 내 트라우마를 스스로 뛰어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론 수업을 끝내면 위의 사진처럼 수영장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스쿠버다이빙 도전은 마음만큼 평탄하지 못했다. 이론 교육 때는 깊은 물의 압력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기본적인 수칙 등을 배우고 마지막엔 시험을 봤다. 위험 요소를 하나씩 배우다 보니 '이거 장난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경각심을 안고 드디어 수영장 교육을 받았다. 스쿠버다이빙 복장을 갖추고 무거운 산소통도 등에 메고 물로 들어갔다. 수심은 1~2미터 정도였는데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헤엄쳐 가도 산소통 덕분에 저절로 몸이 떠서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
막상 깊이 잠수하자 공포감이 밀려왔다. 잭을 따라 잠수한 채로 산소호스가 빠진 경우 등 긴급 상황에 대한 대처를 실습해보는 과정이었다. 나는 온몸이 물에 잠겨있는 상황이 계속 인식되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잭의 팔을 꽉 잡았다. 초반에는 잠수를 오래 하지도 못해서 자주 수면 위로 올라와야 했고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교육 2일 차 때 바다 다이빙을 위해 갔던 누사두아.
잭은 “내가 옆에 있으니 괜찮다", “지금 굉장히 잘하고 있다"며 나를 계속 안심시켰다. 어린아이 달래듯 조곤조곤 어르는 그의 말에 최대한 용기를 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약 1시간의 실습을 마쳤다. 조금씩 적응이 되었는지 후반에는 재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놀이가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물을 조금씩 즐기고 있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잭은 집에 데려다주면서도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속 용기를 북돋아주는 잭 덕분에 앞으로의 실습은 좀 더 잘 해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에는 누사두아(Nusa Dua)에서, 사흘 후에는 뚤람벤(Tulamben)에서 실제로 바다 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나는 또 겁에 질릴 것이 분명했지만 최대한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오랜 트라우마를 정면돌파로 극복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던 탓인지 이날 밤에는 발리에 온 이후로 제일 깊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