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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안 May 05. 2024

취업역량검사를 했던 애매모호한 사람

회사에 안 맞는 사람인가

1. 지원금을 받으려고 취업역량검사, 적성 검사 이런 거를 했습니다. 퇴사나 이직 전 한 번쯤은 유료든 무료든 자발적으로 받으면서 점검하곤 했는데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2. 재밌었던 지표가 몇 있었습니다.


야망 높음.

효능감 낮음.

운동 좋아함. 

사람에 대한 신뢰 없음.

배려심은 높음.

애매하고 모호한 걸 좋아함.


야망. 군대에서 토니 로빈스의 책을 읽고, 사업가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야망은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터지기 일보 직전이죠. 


효능감. 능력보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수치랍니다. 야망의 반 정도였습니다. 늘 성공한 사람들, 야망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모자란 제 학력과 능력 경력 등을 생각하면 눈이 돌아갔습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가만히 있질 못했습니다. 영상도 찔끔. 포토샵도 찔끔. 서비스도 찔끔. CS도 찔끔. 뭐든지 잔뜩 파보고 이해한 뒤에, 찔끔 해봐야 마음이 편했죠. 그런데 그렇게 3년이 지나니 강점이라는 게 하나도 없는 애매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찔끔도 풍덩 담가보고 잘 하는 게 3~4개 정도 되어야 의미가 있는 건데 애매하게 가지고 있는 게 열 몇개 이러니 장점이라고도 하기 어렵죠. 동네 아저씨가 더 잘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운동. 학생 때부터 병약했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코피를 주에 1회는 쏟은 거 같습니다. 이제 언제 코피를 흘렸는지 가물가물합니다. 나아진 건 군대 이후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1일 1운동을 습관화하려고 한 게 5년은 된 거 같습니다. 우락부락한 몸은 아니지만 1년을 주기로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이고 있습니다. 극복하려고 했던 활동이 취미가 되고,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됐네요. 생각이 많기에 가만히 슈카월드를 들으면서 달리는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신뢰. 사업가들의 자서전, 심리학,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등등을 읽다보면 사람이 선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운 거 같습니다. 


배려. 그래도 배려는 해야겠죠. 인간 사회뿐 아니라 동물 세계에서도 가장 승률이 높았던 게 틱택토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네가 치면, 나도 치고. 네가 도와주면 나도 도와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행동하기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선하게 나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건 사회과학적 요소보다는, 종교서적을 읽으며 체득한 거 같습니다. 


애매모호함. 생각이 많은 이유입니다. 압니다. 회사라는 곳이 딱딱 떨어지는 원인결과와 정확한 수치를 좋아한다는 걸요. 그렇지만 저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 같은 사원 나부랭이 수준뿐 아니라 높으신 분들이면 더 공감할 겁니다. 정말 썸네일만 이렇게 바꾸면 조회수가 터지나요? 이 종목을 오늘 사면 밤에 오르나요? 이거만 통제하면 고객들의 반응이 나아지나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적었습니다. 회사에서 가설 검증, 데이터를 따지는 건 시장에서의 반응만큼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 하나라도 더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고 하는 행위라구요. 통제감을 잃는 순간 인간은 불안해지니까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은 거라구요. 그런데 통제하면 뭐가 더 나아지나요? 제게 하루의 시간만 준다면 조단위 기업에서도 남들 하는 만큼 해서 조져진 사례를 백 개는 찾아오겠습니다. 그들이 과연 우리보다 멍청해서 그랬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일을 대충 하는 인간은 아닙니다. 상급자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저도 저 나름대로의 가설을 세우고, 늘 수치와 함께 보고로 제시했습니다. AARRR, 컨텐츠에 들어가는 요소 등을 몇십가지로 나눠 나름의 분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행위와 절차가 D일보에서 했을 때와, 하루 30명이 들어올까말까한 페이지에서 같이 적용하는 게 맞나요? 공공기관, 스타트업, 중견기업에서 같이 적용하는 게 맞나요? 예산이 300만원인 곳과, 3만원인 곳에서 같이 적용하는 게 맞나요? 


팀 쿡과 스티브 잡스 모두 대단한 성과를 이뤘지만 두 사람이 같은 스타일인가요. 부동산 부자와 주식 부자, 코인 부자는 같은 방식으로 부자가 되고 같은 소비를 하고 있을까요. 충주시와 서울시의 유튜브 성공 방식은 같은가요? 


다 다릅니다. 같은 업계라고 해도 제품 네이밍, 회사의 임직원 구성, 가격대, 슬로건, 포지셔닝 등 다 다른데 같은 성공방식이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자는 입장은 아닙니다. 답이 없으니 회사와 같이 찾아보자는 입장입니다. 한 번도 대충 하거나 열심히 일 안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공공기관 홍보팀에 입사하면서 일주일 동안 떠올린 아이디어가 100개는 될 겁니다. 그걸 조심스레 한 두개씩 제안하면서 실행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이실지 모를 겁니다. 이 거대하고 딱딱한 조직에 내 숨을 불어넣는 과정.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성장하는 과정. 이래서 창작자들이 계속 창작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다릅니다. 답이 없으니 같은 방향을 보고 최적의 답을 찾아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채용했으니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우리만의 성공을 만들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새 일을 시작할 때면 두려움부터 듭니다. 효능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 말하는 성과 한 두개쯤 없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아내라고 요구하는 막막함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면, 술 반 병 정도는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같이 만들 수 있는 작은 회사에 가면 실패 확률이 높고, 채용이 아닌 영입으로서 한 기능에 특화된 인재로 일할 수 있을만 한 곳에 가면 만들지는 못해도 실패 확률은 낮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게 마케팅, 홍보, 컨텐츠 커리어를 키우는데 좋은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참 애매모호합니다. 어떤 방향에서든 성공한 사람은 있을 거고, 어떤 방향은 실패한 사람도 널려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애매모호한 선택지 속에서 계속 고민합니다. 행정학과를 간 게 문제였나? 처음 인턴을 자치단체에서 한 게 잘못이었나? 글쓰기가 아닌 영상을 선택했어야 했나? 공공기관에서 1년 반 보낸 게 내게 독이었을까? 스타트업에서의 1년은? 가족회사에서의 한 달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나.


애매모호한 삶을 사는 저도 저지만, 독자분들도 비슷한 애매모호한 고민을 하며 사실 거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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