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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공남 May 14. 2019

위원회/협의회/TF/WG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직장생활에서 회의만 없애면 행복할 것 같다.

나는 정부의 정책을 서포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부와 같이 일하다 보면 다양한 이름의 회의를 많이 접하게 된다. 00 위원회, 00 협의회, 00 TF, 00 작업반, 00 실무반.. 무슨 그룹이 이렇게도 많은지 이름, 유형도 다양하고 목적도 거창하다.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저런 회의들이 정상적으로 굴러갔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 같다. 이 그룹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걸까?




먼저 그룹의 형태부터 살펴보자. 위원회는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구성되는 회(會:모일 회)이다. 협의회는 특정 분야의 현안과 이슈를 협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회이다. 위원회와 협의회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그룹으로는 Task Force Team(TFT)가 있는데 특수목적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Working Group(WG)은 말 그대로 실무를 전담하기 위한 그룹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그룹에는 産(산업계=기업), 學(학계=대학교), 硏(연구계=정부출연연구소), 官(정부=관계부처+산하기관) 전문가가 참여하게 되는데 목적 달성을 위해서 밸런스 있게 합리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회는 목적을 달성하면 해산하게 되지만 명분(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과 실리(실제로 얻는 이익)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좋은 취지의 모임이고 참여자도 훌륭하고 운영 방식도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현황을 보면 개선할 점이 많다.


문제 1 : 명분만 있는 경우,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정부 부처들은 청와대에서 발표한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행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이행 계획은 부처에서 단독으로 추진할 수가 없고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순리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한데, 소속감을 갖게 하고 공통의 목적의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원회는 장/차관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장관이 주관하는 회의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임원이 참석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언한 내용들이 상당한 무게를 가진다. 발언하나 하나가 모두 권한을 갖는다고 보면 된다. 이를 잘 이용하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보통은 참석자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점은 가리고 우수한 면만 부각하거나 비판적인 말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당면한 문제나 현안들을 직결로 처리하고, 중소기업들의 발전에 힘을 실어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직언을 아끼지 않는 건설적인 회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보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한 기업의 임원 정도면 뛰어난 통찰력과 판단력이 있을 텐데 아쉽게도 공식석상에서는 망부석이 되기 일수다. 자신이 발언한 내용에 대해서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많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문제 2 : 실리만 있는 경우, 올바른 방향을 말하는 이가 없다.


A부처에서 진행돼온 정책이 있었다. 이 정책은 그 당시에 가장 현실적으로 타당한 정책이었다. 그 정책은 몇 년간 유지되었고 기술개발을 위해서 꽤나 많은 예산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외 상황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정책을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서 국회의원의 지적사항이 눈에 밟히고 산업계에서는 그 간에 개발한 기술은 어떡하냐며 아우성이다. 시간이 계속 지날수록 국가 예산낭비는 커지고 이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매몰비용이 걱정돼서 협의회를 구성했다. 과연 잘 해결이 되었을까?


국가의 정책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혜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입는다. 물론 손해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관계자 간의 협의를 진행하고 다양한 대안들이 마련되지만 쉽지 않다. 그 손해가 금전적인 손해일지, 내 생존과 직결된 손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방향을 말하는 이가 있을까? 내 경험으로는 없다. 자신의 밥그릇이 달린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아무리 회의를 개최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의 방향성(명분)이 없어 실리만 논의하는 경우는 소모성 논쟁만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난 경우이기 때문에 회를 파해야 한다.


문제 3 :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 목적을 잃고 숙제만 하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회(會:모일 회)는 모임을 구성하기 전에 먼저 목적(목표)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끔 시간에 쫓겨 만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구체적인 고민 없이 만들어진 모임은 담당자가 무엇을 논의해야 할지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난상토론을 하다가 끝나버리게 된다. 


나는 회의를 주관한 담당자라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참석한 전문가 분들에게 적어도 배경과 취지를 설명하고 회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담당자는 전문가만큼은 아니라도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방향성 정도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앞선 사례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기본적인 준비가 안된 회의는 개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여담인데 글을 쓰다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과거에 장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전문가 한분이 비판적으로 발언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의 적절하고 직관적이고 형평에 어긋남이 없어서 훌륭한 언사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상하게 그 전문가는 다음에 개최되는 회의나 행사에서 보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왜 그런가 살펴보니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 실무선에서 초청을 하지 않는 경우였다. 아마도 그 당시에 발언 때문에 실무자들이 후속조치로 고생을 좀 한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위에서는 모르겠지만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것이고 좌가 있으면 우가 있는 것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인 것을.. 나에게는 균형이 깨져버린 안타까운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앞으로는 꼭 필요한 그룹만 만들어지길, 그리고 위에 언급한 일들이 개선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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