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마시는가?
와인은 포도로 만든 발효주이다. 한 때는 물을 대체하는 “생활필수품”이었고, 전쟁의 보급품이었으며,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식수의 위생 수준이 향상되었고, 와인이 알코올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필수품으로써의 위치에 변화가 찾아왔다. “기호 식품”으로 타이틀이 바뀐 것이다. 이제 와인은 상품으로써 경쟁력이 필요해졌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자본이 투자되기 시작했고, 시장 논리에 따른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상품의 브랜드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다.
1981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두 명의 남자가 있었으니, 미국의 로버트 파커 주니어, 프랑스의 미셸 롤랑이 되시겠다.
로버트 파커 주니어는 “Wine Advocate”이라는 온라인 사이트에 자신의 와인 시음기와 평가 점수를 상세히 올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20점제와 달리 미국인에게 익숙한 100점제를 도입해 접근성의 본능적 허들을 낮췄고, 친절한 시음기는 와인을 마시는 이들의 나침반이 되었다. 미셸 롤랑은 로버트 파커 주니어의 품질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포도 재배 방식과 와인 양조 기술의 선구자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와인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 결과,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맞은 와인, 미셸 롤랑의 컨설팅을 받은 와인은 “브랜드화” 되기 시작했다. 그 후 “가라지 와인”, “컬트 와인”이라는 신조어가 출현하며 해당 와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에 이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가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위와 권력이다. 이 가격을 편하게 지불하고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표출. 이제 와인에는 “기호 식품”외에 “과시 식품”이라는 새로운 소비 영역이 탄생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뽐내고 싶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SNS가 일상화되면서 나를 노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많아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비싼 차를 타고, 얼마나 해외여행을 자주 가며, 고급 스시야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제 집 드나들듯 가는지 은근히 자랑할 수 있게 된 것. 와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고급 샴페인과 부르고뉴, 보르도와 바롤로를 마시며 한 장에 이 모두를 담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쿨한 해시태그와 함께.
#와린이
와린이가 20만 원짜리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을 마신다. 해석하자면, “나는 와인을 잘 모르지만 20만 원짜리 와인을 큰 부담 없이 마셨어.” 정도 되시겠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실 와린이가 아니다. 분명 고가의 와인을 여러 번 마셔본 사람일 거다. 진짜 와린이는 술이 5만 원만 넘어도 엄청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굳이 저런 해시태그를 달지 않더라도, 고가의 와인을 편하게 마셨다는 과시욕의 표현은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거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취향이 뚜렷해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이지, 과시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경지에 이르기 전에 분명히 과시의 늪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SNS 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고급 상품에 돈을 쓰는 것은 장려해야 할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럭셔리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적절한 의욕 활성제이다. 다만, 국내 와인 시장이 커지길 바라는 업계 종사자로서 하나의 이미지로 쏠리는 것은 조금 우려된다.
30대가 되면 돈을 벌기 시작하고, 소비 수준이 달라진다. 기존에 잡지에서만 보던 시계와 향수를 사고, 와인이라는 것을 마셔보려 한다. 하지만 이놈의 영어와 불어로 도배된 라벨은 당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기 귀찮다. 와인이 왜 소주, 맥주에 비해서 수십 배가 비싼지 모르겠고, 와인을 아는척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괜스레 꼴 보기 싫다. 산도가 높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신맛이 안 느껴진다. 하지만 잘 모르는 게 쪽팔리니까 꿀 먹은 벙어리마냥 가만히 앉아서 달지도 시지도 않은 붉은 술을 홀짝인다. 그리고 와인은 나와 맞지 않는다며 역시 소주에 삼겹살이 진리임을 되새김질한다. 다음 날 인스타그램을 보면 여전히 부르고뉴 무슨 그랑 크뤼가 역시 맛있다는 사진이 수두룩하게 올라와있다.
와인 시장이 커지려면 돈 벌기 시작한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되어야 한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젊은 층의 키워드가 ‘평등’이라더라. 이 ‘평등’을 실현시킨 와인이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라벨에 아무런 글씨가 없다. 기존에 고급 와인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도 이게 무슨 와인인지 모른다. 품종도 처음 들어본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주장할 수 있다. 네 입맛과 내 입맛은 다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라고. 너와 나 모두가 잘 모르니 거리낄 게 없고, 마음은 편해지고, 라벨도 이쁘니 인스타그램으로 딱이겠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돈 벌고 있으니 뭐 어때. 내추럴 와인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기존에 와인을 무수히 마셔오던 소위 “Old Generation”이 불러일으킨 논쟁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애초에 와인을 모르니 이런 논쟁은 관심도 없었을 터.
하지만 내추럴 와인의 태동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와인 시장의 소비는 갈길이 멀다.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되려면 지금보다 더 흥미를 끌 수 있는 서비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적합한 교육을 받은 소믈리에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 “와인 = 럭셔리”라는 판에 박힌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술”이 되어야 한다. 와인의 거부감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교육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가 오프라인 샵에서 와인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좋은 품질에 대한 기준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와인 전문가”들은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의 와인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와인 유튜브 채널 ‘와인킹’을 보면, 마스터 오브 와인에게 국내 마트에서 잘 팔리는 와인들의 품질을 평가해달라는 댓글이 수두룩 빡빡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찐”전문가의 디렉션을 원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과시가 아니라 실용적인 소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와인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좋든 싫든 대한민국은 남에게 보여지는걸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코로나 이후로 이 작은 와인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짐작이 안 된다. 다만 바라건대, 와인 소비가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와인의 얼굴이 다양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소믈리에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것은 처우 개선의 구조적인 문제와 얽혀 있어서 더 답답하다.
프랑스에서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끄적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