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샘> <터미널> 그리고 <패딩턴>
영화 내용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텅 빈 거실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너무 많이 우느라 영화 내용을 머리에 담을 새가 없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터미널>이란 영화를 보고 '빅터 나보스키'란 인물을 보며 또 혼자 엉엉 슬프지도 않은 장면에 울었다. 다음으로는 <패딩턴>을 만났다. 순수한 마음으로 젠틀하게 사람들을 대한다. '친절하다' 보다 '젠틀'이 어울린다. 정직하고 또 따뜻하다. 마음도 생긴 것도 페루에서 온 가상의 네이티브 영국 스피커를 보면서 살짝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렇게 세명의 캐릭터를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를 물어보면 언제나 'B급 그리고 그로테스크'를 말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분명 저 셋이다. 세 캐릭터의 공통점은 영화 속 사회에서 배척받는 소수자라는 점이다. <아이 엠 샘>의 샘은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도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샘이 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다.
<터미널>의 빅터는 러시아 연방의 나라에서 온 음..., 중앙아시아 사람이다. 비행 중 고국에서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국가가 사라져 버리면서 여권 효력이 상실된 체 입국도 출국도 못한 체 뉴욕 JFK 공항에 갇혀버린다. 러시아 연방에서 온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이 뉴욕 공항에서 지내는 이야기다. 스치듯 봐도 냉전시대의 뿌리 깊은 대립이 먼저 떠오르는 구성이다. 게다가 JFK 공항에서 빅터와 부딪히는 인물들은 불법체류 중인 인도인, 멕시칸, 흑인, 혼혈, 백인까지 다양하다. 뉴욕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빅터는 친절함과 뚝심으로 이들의 지지를 받는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빅터가 어느새 JFK 터미널의 '핵인싸'가 되어 터미널 문을 나서는 장면을 볼 때면 매번 같이 기쁨과 뿌듯함 슬픔과 아쉬움이 담긴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으로 <패딩턴>은 일단 인간사회에 와버린 곰이다. 진짜 곰. 영어를 할 줄 알며, 스피킹 능력이 아주 뛰어나지만 어쨌든 곰이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치이고, 끝내 자신을 받아준 가족들 사이에서도 쉽게 자리잡지 못한다. 심지어 패딩턴은 빅터와 달리 사고뭉치다. 선의로 행한 모든 일이 사고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칸트의 입장을 대변하듯 선한 의도로 행한 행동은 결국 사 고을 일으킨 끝에 선한 결과로 돌아온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선의를 알아봐 준 가족들 곁에 정착하는 이민 곰의 이야기다. 나는 사랑받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특히 친절함과 정직함, 뚝심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현실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샘을 볼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혼자 겪는 사춘기에 지독하게 외로웠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보면 울지 않을 영화를 혼자 엉엉 울며 볼 정도로 지독하게 외로웠던 중학생이었다. 나의 집착과도 같은 영화와 드라마 시청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 한 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지 못했던 나는 혼자 있는 텅 빈 시간을 채우고 싶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었다. 아마 모자라지만 항상 서로를 지켜주는 이들과 함께해는 샘의 여정이 아름답고 부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방학 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어서 살면서 가장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 그 습관이 남아 지금도 외로울 때면 밤을 지새며 졸린 눈을 꾸역꾸역 뜨고 드라마랑 영화를 본다.
<터미널>의 빅터는 외로운 중국 교환학생 시기에 만났다. 애매하다 싶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갈까 말까 고민하던 교환학생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낮을 가리는 나에게 낯선 친구들만 가득한 새로운 환경을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6개월이라는 이별이 정해진 시간은 노력해서 인간관계를 만들 의지도 노력도 잃게 했다. 나는 오랜 시간 길게 천천히 인연을 쌓는 편이다. 더불어 의도치 않은 사고까지 생기면서 매일 힘들다고 후회하며 울며 잠드는 시간이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되는 일이 없기도 했다. 그때 본 영화가 <터미널>이다. <터미널>의 주인공 빅터는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오는 길에 하필 나라가 쿠데타로 사라지다니. 진짜 되는 일도 없는 캐릭터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낯선 뉴욕 공항에서 지내는 빅터는 금새 터미널을 집처럼 여기고 친절함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나도 저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친절하고 베풀며 표현할 줄 알아야지. 낮선 곳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긴 했다.
그 뒤로 드라마틱하게 내가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불편한 사람을 피하고, 굳이 노력해가며 상대의 태도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관계로 고민할 땐, 친구가 왜이럴까 동료가 왜이럴까 고민이 될때, 간단히 피해버렸던 이전과 달리 샘과 빅터를 생각하며 먼저 다가가는 작은 용기를 내기도 했다. '상대의 태도와 상관없이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을 곧이곧대로 표현해야지, 친절을 베풀어야지' 작은 다짐을 반복해 쌓아올렸다.
마지막으로 <패딩턴>은 취업 준비로 힘들던 시기에 보게 된 영화다. 여전히 나는 힘들면 날카로워지고 혼자만의 방에 숨어버리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숨어서 나의 날카로움이 나를 찌를 때 '행복한 곰'을 만났다. 태풍에 집이 사라지고 삼촌을 잃고 고향을 떠났으면서, 속도 없이 오렌지 마멀레이드 한 통에 눈을 반짝 아고, 칫솔로 귀 청소를 하며 귀르가즘을 느끼는 곰이라니. 너무 귀여워. '그래 저렇게 큰 슬픔은 작게 넘기고, 작은 것에 큰 행복을 느끼며 대충 살자'는 용기를 준 곰이다. 모자 하나 들고 영국에 떨어져도 젠틀하고 뚝심 있게 사랑이 가득하면. 그래 저렇게 결국 행복해지겠지. 작는 것에 행복하자고 말하는 어떤 에세이나 자기개발서 보다 큰 울림을 준 곰돌이다.
사실 세 캐릭터를 좋아하며 내가 얻은 결론이나 배움이라면 고작 '사랑하라 친절하라 베풀자'가 전부이다. 교회를 다녔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힘든 시기 이 세 캐릭터를 만나며 그럼에도 언제나 친절함이 먼저 사랑이 먼저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 모진 풍파가 몰아치고 사나움이 나를 감싸 날카로운 염세주의자가 되기 전에 어디선가 '친절하라~ 사랑하라~ 베풀어라~"라는 믿음의 소리가 스멀스멀 들려왔다.
혼자 살고, 둘이 살고, 나와 살면서 험한 사람들을 대하며 어느새 험해진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까칠하게 상대를 대하고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대로 되 갚아 주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되 갚아 주는 행동을 한 뒤에는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마음을 콕콕 찌른다. 불쾌한 대접에 화를 내고 난 뒤에도 "친절하게 맞받아 칠걸,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걸"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아직 실천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히 맞서는 게 옳다고 믿는다. 사랑하고 친절하기 위해 맞서기를, 단순히 맞선다는 행동에만 집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맞서기에 집중할 때가 더 많지만.
베풀고 나누며 행복을 전하는 용기와 뚝심을 가진 캐릭터들을 사랑한다.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하며,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을 넘어 상대의 태도와 상관없이 사랑을 전하고 친절을 베푸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부족한 사람으로서 난 그 용기가 넘치는 캐릭터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찾고 또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