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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Sep 14. 2021

이런 투게더 같은 드라마

KBS경찰수업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가끔은 생각나는 맛



증명사진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40대 정도 되어 보이던 사진사분이 했던 말이 자주 기억난다. "나이가 들 수록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싫어하게 된다. 드라마를 틀었을 때 누가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채널을 돌린다."


TV 드라마의 역할은 무엇일까. TV는 오래도록 쿨 미디어였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보는 TV 콘텐츠는 바로바로 재미를 선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채널을 돌리며 드라마를 보는 시대가 점점 끝나가고 있지만. 집중해서 보면 재미있는데 집중해서 보려고 TV를 보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쿨 미디어로서 TV콘텐츠는 자세히 보면 더 재미있는 '퀄리티'에 집중하지 않는다. 시각미술에 상징성을 부여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숨기고 복잡한 구성으로 미학을 추구할 시간이 없다. 시청자가 채널을 돌리기 전에 멱살을 잡고 끝까지 끌고 가는데 집중한다. 드라마 문법이 영화와 다를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시청자의 리모컨 1시간 동안 잡아 둘 매력적인 그러나 복잡하지 않은 또 그러나 지루할 정도로 쉽지는 않은 스토리라인이 핵심이다. 그래서 종종 드라마 속 인물은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슬프면서도 기쁘고,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순간 채널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TV 드라마의 역할은 하루의 피로를 날리고 복잡한 머릿속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손에서 리모컨을 놨다. 드라마는 채널을 돌리다 어쩌다 보게 되는 경우 보다, 직접 선택을 해서 처음부터 시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쿨하지도 핫하지도 않은 태도에 드라마도 양분되었다. 입체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나쁘면서도 착한 수준이 아니라 나쁜 짓이 나쁜 짓인 건지조차 같이 고민할 수준이다. 나쁜 걸 나쁘다고 해야 하는데 나쁜 건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안 나쁜 건 아닌데 아 결국에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구나 하는 철학적 질문이 쏟아진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달라진 드라마 문법에 익숙해진 시청자라면 <경찰수업>을 처음 보고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2021년에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KBS의 몰락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300억대의 스위트홈을 보고 왔다면 이 드라마가 웹드라마일까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막무가내 스타일의 정의로운 형사, 30년은 반복되고 있는 듯한 풀냄새나는 열정과 순수함 가진 경찰대 학생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진부함과 촌스러움을 숨길 생각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오히려 이점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꾸밈없이 투박한 투게더 같은 맛. 언뜻 생각나는, 별 다른 첨가물이 없어서 있는 그대로 맛있는 맛,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는 맛이다. 편안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편안하다고 느껴본 적이 꽤 오래된 기분이 든다. 믿음직하다. 드라마에 믿음직하다는 말을 쓰는 게 어색하지만 믿음직한 드라마다. 전지전능한 시청자가 된 듯 완벽하게 화면 밖에서 인물의 행동을 예측하고 다음 스토리를 꿰뚫는다. 기대하는 것을 기대한 만큼 보여준다.


그리고 <경찰수업>은 착실하게 서사를 쌓아간다. 복잡하고 화려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기본에 충실한 드라마가 나쁜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겉모습 뒤에 기본을 잃은 드라마도 다수이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을 만들어가다 결국 제 길을 정하지 못하고 철학적인 열린 결말에 숨어 결말의 짐을 시청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많다. 복잡하게 꼬아버린 실타래는 푸는 방법에 있어서도 복잡했던 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댕강 가위를 들고 와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수업은 꽤 높은 시청률을 선보이며 순항하고 있다. 다이어트 명언으로 널리 알려진 옥주현의 한 마디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어차피 아는 맛이다." 더 선명하고, 더 화려하고, 더 상징적이고, 더 철학적이고, 더 자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불타오르는 콘텐츠 시장에서 오히려 투박한 캠퍼스 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복잡했던 하루에 끝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서 웃으며 볼 드라마를 찾는다면 <경찰수업>을 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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