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브 Liv Jun 19. 2020

코로나가 무서워서 회사에 안 나갔다.

나 혼자 디지털 노마드 

5월 29일 금요일,
여느 때처럼 버스와 지하철을 내렸다. 오르고 한참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다. 

노트북을 올려두고 전원을 연결한 뒤 한숨 돌리려는데 휴대전화에 징- 진동이 온다.

웬일로 이른 시간에 아이 어린이집에서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성동구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중략- 
긴급한 사유로 가정보육이 어려우신 가정을 제외하고
당분간 가정 양육을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허- 하는 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저번 주 어린이집 선생님이 확진자 가족과 접촉이 있어.

다급히 며칠간 가정보육을 했던 참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철렁 했으나 결국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다행히도 헤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던 것일까
갑자기 집 주변 1km 내에서 확진자가 여럿 발생하고 

심지어 집 앞의 가게에 확진자 동선이 뜨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지 4개월,
'언제 끝날지도 모를 상황에 계속 움츠려 살 수만은 없으니 

조심하되 생활은 유지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동안 어린이집에서도 '방역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보육이 필요하신 분들은 걱정 말고 언제든 맡기세요.'
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정중한 메시지였으나 분명히 경고의 노란 딱지였다. 


근래 항상 기분 좋음을 유지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우울해질 수 있다니. 

또 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선택지 1. 애를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고 아이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부모가 되자.
선택지 2. 애를 집에서 보고 홀로 재택근무하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직원이 되자.




 그 날 오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오전 내내 혼자 한숨을 푹푹 쉬다가 

엄마인 동료이자 내 멘탈을 지켜주는 버팀목, Jin에게 SOS를 보냈다. 


갑자기 불려 온 Jin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 같이 화도 내주고 공감도 해주고 

제 생각도 이야기해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Jin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동안 Su가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일만 한 것도 아니고,
회사가 바쁠 때 Su가 회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던 모습을 우리가 알잖아요.
그동안 쌓인 신뢰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일로 잠시 재택근무를 한다고 나쁘게 볼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잠시 일을 많이 못 한다고 해도 나중에 시간이 안정이 될 때 더 잘하면 되죠!'


이 말에 너무 감동한 나는 눈물이 살짝 핑 돌았다. 

그리고 일은 재택으로도 할 수 있지만, 건강은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우리 회사는 코로나 이전에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원격근무 신청이 가능했다. 

그리고 수도권 확산 세가 보이던 일주일 전부터 

CEO인 June은 매일 하루도 안 빼놓고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으니 혹시 재택근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이야기해주세요.'

라는 말을 해왔었다. 


그러니 내가 나 홀로 재택근무를 신청한다는 것이 =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해석은 

우리 회사 문화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일과 육아를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불러온

어김없는 자기검열이었을 뿐.


그래서 나는 바로 June에게 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나 : 집 주변에 확진자가 많이 발생해서 다음 주에는 재택근무하겠습니다.

CEO : 네 혹시 더 재택 하셔야 되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세요.


그렇게 So Cool 한 대화를 마친 우리는 그대로 Cool 하게 퇴근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 날 밤 빠르게 짐을 챙겼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시댁이 있는 거제에 도착했다. 

거제 집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고 


고사리손으로 딴 매실과 개미 딸기


아이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신나게 놀았다.
인구 밀도는 현저히 적었고 

마스크를 벗고 해안가를 막 뛰어다니니 고갈되었던 정신 에너지가 다시금 차올랐다. 


나는 6시경 일어나 아이가 깨기 전 2시간 동안 일보고 

11시부터 4시까지 아이가 혼자 노는 동안 일을 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맡기고 카페에 가서 2시간을 더 일했던 나날들. 


 동료들과 시공간은 달랐지만
많은 배려가 모여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을 한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회사 창립기념일 날 점심 회식에 줌으로 참석했다. 

데일리 미팅이나 회식에서도 소외당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씌운 이기적인 부모 vs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직원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깨트려 준 것은 

나를 지지해주는 동료들과 어느 곳, 어떤 시간에도 업무가 가능하도록 잘 짜인 회사의 시스템이었다. 

 

사회적 지지와 시스템이 맞물려 돌아가는 성숙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에 200:1 경쟁률 뚫고 입사한 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