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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 Liv Aug 22. 2020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졸업까지 7년 반 걸린 길고 긴 대학생활 이야기  

8월 21일 모교의 대학 졸업식이 열렸다.

https://v.kakao.com/v/20200821154411829

자그마치 7년 반을 기다린 졸업식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전례 없는 드라이브 쓰루 졸업식이 연출되었다.

나는 결혼식 같은 로망은 단 1도 없지만 전 남자 친구(=현 남편)를 만나고, 창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던 모든 과정의 배경이 되었던 학교 졸업식은 정말 잘 챙기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나보다 더한 '남편 (11년째 졸업 못했음;;) 이 학교 생활을 마무리할 때 같이 졸업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미뤄져 잘 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참으로 길었던 대학생 신분을 벗어난 걸 기념하며,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


고3 시절, 어떤 과를 가야 할지 고민하던 이과생. 성적도 그저 그렇고 딱히 꿈도 없었다.

그 시절 취미는 신문 읽기, TV / 컴퓨터 / 휴대폰이 없었기에 너무 심심해 매일 신문을 읽었더란다. 당시 조선일보에 처음으로 '더 나은 미래'라는 부록이 신설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


사회적 기업을 설명하는 이 문구를 그 부록에서 처음 발견하고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기업의 존재 자체가 사회를 위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나도 그런 멋진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  고3 6월 모의고사를 목전에 앞둔 상태였지만 나는 경영대학을 가기 위해서 교차지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회경험 하나 없는 순진한 머리로는 창업을 하려면 경영학과에 가야 한다는 결론밖에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에 가장 열심히 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쭉쭉 올라 수능에서는 최고점을 찍었지만, 왠지 탄력 붙은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 재수를 선택했다. 그리고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2번째 수능에서 재수생활 중 최저점수를 기록하고 결국 현역 때와 같은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2013년 : 꿈의 첫 시작

#홍익대경영학과 #우쿨렐레동아리 #인액터스 #학사경고 #동구밭 #강동구희망별동대4기


당시 학교에 별로 애정이 없었다. 우선 많은 신입생들이 그러하듯 원하던 학교가 아니었고 + 술이 주 목적인 것 같은 과문화가 싫었고 +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또 공부해야 하나?라는 반항심이 있었고 + 무엇보다 나는 창업을 하고 싶은데 배우던 과목들이 다 쓸데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멋모르던 과거의 나 반성해...


그래서 패기 넘치게도 수업을 거의 안 나갔다. 결과는 학점 1.75로 학사경고.   

그나마 위안이라면, 수업을 안 나간 대신(?) 동아리를 참 열심히 했다.  


가장 먼저 가입한 동아리는 우쿨렐레 동아리 알로하였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어서 하나는 꼭 마스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왠지 대학생활에는 기타 같은 현악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축제 주점도 참여해보고 작은 공연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메인 활동 무대는 인액터스였다. 인액터스는 기업가 정신의 실천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미션을 가지고 활동하는 국제 연합 단체다. 전 세계 36개국에서 1,730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단체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대상자의 문제를 지속 가능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매일 치열하게 회의하고 준비하던 그 때


당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킨트'라는 프로젝트에 들어가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을 기획하고, 개선했다. 매주 교육안을 기획하고 토요일마다 복지관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복지관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서 다른 프로젝트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열띤 토론 끝에 우리 팀은 모두 관심이 있던 '도시텃밭'이라는 아이템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도시 농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같이 도시 농업 및 환경 단체를 인터뷰하고 논문을 찾아보고 실제로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며 공부했다. 당시 새벽에 일어나 홍대 무대륙 텃밭에 물을 주고 학교로 가서 수업 듣고, 끝나면 인터뷰/미팅을 다니는 거나 회의하는 것이 루틴이었다. 도시농업이 세상에 만들어 낼 가치가 뭐가 있을지, 비즈니스로는 어떻게 연결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탐색하다가, 학교를 졸업한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이 직업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농업이 가진 공동체 형성 및 정서적 안정감 제공이라는 특징은 발달장애인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도시농부라는 직업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동구 밖 과수원길-이라는 노래에서 따와, 프로젝트 명을 마을 어귀 작은 텃밭이라는 뜻인 '동구밭'으로 지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강동구 희망별동대 4기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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