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커리어 플랫폼 위커넥트와 인터뷰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한 달 전 여성을 위한 커리어 플랫폼인 위커넥트에서 메일이 왔다. 엄마로서 IT 스타트업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는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고 내가 인터뷰할 깜냥인 것인가 잠깐 고민을 했지만 아래의 두 멘트를 보니 수락을 안할 수가 없었다.
1) 용기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경력보유여성들을 임파워링하고
2) 더 많은 회사가 유연하게 경력보유여성을 채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나 또한 입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내가 과연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사회적으로 너무 어린 나이 였고, 그로인해 주변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서 더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나를 잃어 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결심으로 용기를 냈고, 지금은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게 해주는 회사에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TMI 같기도 하고 조금 두려웠던 때도 있었지만 한 동료가 내게 해준 말이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저는 회사에 같은 엄마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큰 힘이 돼요."
사람들은 힘들 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출판 시장이 불황을 겪는 와중에도 다양한 에세이들이 소비되는 것 아닐까?
나도 내 삶을 공유함으로서 이 세상의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멀리서나마 힘이 되고 싶다.
아래의 인터뷰가 그 첫걸음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너무나 멋진 글을 써주신 위커넥트와 성소영 기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히든트랙 경영지원 매니저
대학 시절,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동구밭’을 창업한 지연수 님은 자신의 움직임으로 발달장애인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큰 보람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일터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고 삶의 생기를 되찾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녀는 자연스레 조직문화와 인사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동구밭 부대표 지연수’에서, 스타트업 ‘히든트랙 경영지원 매니저 지연수’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다. 그녀는 히든트랙 직원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선물하는 자신의 일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히든트랙은 어떤 회사인가요?
일정 데이터 스타트업으로, ‘린더’라는 캘린더 구독 플랫폼을 만든 회사예요. 린더는 ‘캘린더’에서 ‘캘’을 빼고 지은 이름인데요. 그동안의 캘린더는 개인이 일정을 입력해서 사용하는 형태였다면, 린더는 나의 관심 분야에 있는 일정들을 계속해서 알림으로 제공해 주는 서비스예요. 예컨대 내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지정해 두면 그 아이돌이 참여하는 행사, 스케줄 등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거죠. 저는 히든트랙에서 경영지원 및 인사와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근무환경이 무척 자유로운 것 같은데, 연수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저희 회사는 주 40시간 근무제가 기본이고 그 안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어요. 저는 오전 10시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11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쭉 일을 해요. 출근 시간이 늦어서 퇴근도 그만큼 늦게하는 편인데,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재택근무를 신청하거나 평일에 쉬고, 주말에 일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조금 늦게 가는 편이네요. 출근 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네 맞아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 보통 아이들은 아침에 눈 떴을 때 컨디션이 제일 좋잖아요.(웃음)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에 엄마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연수님의 첫 경력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기업 ‘동구밭’ 창업인데요. 현재의 남편이 대표, 연수님이 부대표를 맡았던 걸로 알아요. 어떻게 사업을 시작한 건가요?
대학교 사회적 기업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만든 회사예요. 처음엔 그저 동아리에서 여러가지 사회적 가치를 결합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는 수준이었는데 사회적기업 지원센터 육성사업에 지원했다가 선정이 됐어요.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고, 경험하는 셈 치고 했던 일인데 운 좋게도 컨설팅과 4천만 원의 지원금, 사무실을 받게 됐죠. 그 지원사업의 마지막 조건이 사업의 법인화였거든요. 그래서 창업으로까지 이어졌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사업이 점점 커졌어요. 어떤 큰 그림 없이, 순간순간 마음 가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와, 이만큼 와 있네?’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창업도 그렇게 얼렁뚱땅 시작했던 거였어요.
저는 호텔에서 동구밭 비누를 처음 봤어요. 특급호텔에 사회적 기업 제품이 어매니티로 제공되는 게 신선해서 기억에 남았고, 무척 큰 회사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요. 제가 퇴사하기 직전까지는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며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가 되는 ‘발달장애인 사회성 교육 프로그램’을 주사업으로 운영했어요. 이후 비누 사업으로 확장하며 호텔에도 납품을 하게 됐죠. 지금은 회사 규모가 많이 커졌어요.
그런데 왜 그만두신 거예요? 내부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볼 땐,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회사가 잘 되고 있는데 퇴사를 한 게 의아했어요.
몇 년간 같이 일해 본 결과 부부는 같이 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자주 싸우고요.(웃음) 회사가 많이 바쁠 땐 두 사람 모두 아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잖아요. 회사 일로 다투거나 하면 그 기분이 가정에서도 이어질 테고요. 하나의 일에 두 사람이 쏠려 있다는 게 좀 위험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4년간 동구밭에만 매달렸는데, 다른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죽기 전에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를 늘 염두에 둬요. 당시에는 동구밭에 계속 남는 것보다, 새로운 일을 해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동구밭을 운영하면서 결혼하신 거죠? 연수님이 지금 20대 중후반이니까,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이른 결혼이에요.
네 아이가 생겨서 갑자기 결혼하게 됐어요. 2016년 10월에 결혼해서 이듬해 5월에 출산하고, 8월에 퇴사를 했죠. 출산 한 달 전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아이 낳고는 재택근무를 했어요. 당시에 텃밭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비누 사업으로 넘어가는 단계라 업무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태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매일 자정까지 일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무사히 인수인계를 마쳐서 좋은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퇴사하고는 학교에 다녔어요. 창업하느라 휴학을 했었거든요. 학사 일정이 2년 남았었는데, 정확히 아이가 100일 된 날에 복학을 했어요.
그럼 학교에 가는 게 진짜 좋았겠네요.
아니에요. 너무 힘들었어요. 어릴 때 생각 없이 뛰어든 사업이 갑자기 커져서 이전까지는 제 미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저 지금 닥친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겠단 생각으로 매일 일만 했어요.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고,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정신없이 출산하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학점은 최소 3.5를 넘겨야 하고, 토익은 몇 점 이상 돼야 하고, 어떤 스터디를 해야 하는지 같은 얘기들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어요. 사업을 잘 꾸려가야 한다는 목표가 사라지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에 2년간 방황을 많이 했죠. 어쨌든 당시 주어진 일이었던 성적 올리고 영어 자격증 따고, 그런 걸 따라하면서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었어요.
위커넥트의 인터뷰라서 묻는 질문인데요. 그럼 백일된 아기는 누가 봐줬나요?(웃음)
저는 육아계의 금수저예요.(웃음) 친정엄마가 저희 집 5분 거리로 이사를 와 주셨거든요. 딸이 너무 어릴 때 결혼과 출산을 하니까, 대학은 졸업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덕분에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졸업 후 전업주부로 남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도 엄마가 힘이 돼주셨어요.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힘이었겠네요.
네, 동시에 죄책감도 들었어요. 엄마로서 아기에게 집중을 해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기대서 저 혼자만의 삶을 찾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타임푸어>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우리는 ‘너무 완벽한 엄마상에 휩싸여 있어서 이렇게 힘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고요. 먼 옛날의 엄마들은 집안일이나 농사일로 바빴고, 아이는 다른 가족이나 이웃 주민들과 공동육아를 했는데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잖아요. 오히려 옛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고 있는데도요. 그걸 보고 내가 너무 완벽하게 모든 걸 해내려는 강박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좀 내려놔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당당하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려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너무 억울한 건, 사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런 고민 안 하잖아요.(웃음)
그러니까요. 저희 남편은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해 생각이 좀 트여 있는 편이지만, 본인이 겪지 않은 일은 모를 수밖에 없나보더라고요. 사실 저희 엄마께 드리는 양육비와 아이 교육비, 사회생활을 위한 지출 등을 따지면 제가 지금 돈을 버는 건 거의 제로섬 게임이에요. 그걸 보고 남편이 “아이도 아직 어린데 일을 그만두는 게 어때?”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막 따졌어요. “3년 전을 생각해 봐라. 오빠는 일에 완전히 집중해서 여기까지 왔고, 나는 출산으로 3년의 공백이 생겼다. 출발선이 다른데 현재의 결과만 놓고 나를 비효율적인 사람 취급하지 말아 달라. 내가 3년 뒤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일 거 같냐”고 했더니 아무 말 못하더라고요. 그후에는 제 일에 대해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아요.(웃음) 출산이 여성에게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아이를 낳은 후에야 알았어요. 내 딸이 미래에 살았으면 하는 모습으로,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히든트랙에 입사하기 이전에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 생활도 하셨다고요.
네, 9개월 정도 공기업 대상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공기업은 나와 정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위계질서가 강하고,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걸 가까이에서 보고 겪으면서 ‘나는 어디서 일하고 싶을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긴 고민 끝에 나온 답이 스타트업이었어요. 그래서 위커넥트를 통해 히든트랙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히든트랙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히든트랙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시작된 회사고, 창업자 다섯 명이 지금도 같이 일을 하고 있거든요. 에너지 넘치고 활기찬 회사일 것 같아서 좋았는데, 실제로도 그래요. 특히 조직문화에 대한 실험을 많이 하고, 열린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조직문화와 교육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취업하길 희망했거든요.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회사라는 점이 제일 좋았죠.
그럼 조직문화 자랑 한번 해주세요.
너무 많은데요.(웃음) 일단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도 원격근무를 많이 했어요. 수요일은 전사 원격근무 데이라 아무도 출근을 안 하고요. 평소에도 일이 있으면 캘린더에 공유하고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교육비를 전액 지원해요. 덕분에 회사 다니면서 고가의 인사 교육들을 챙겨들을 수 있었죠. 또, 매 달 전 구성원이 같이 회고를 해요. 월간회고 자리에서는 일에 대한 이야기보다 내면 속 깊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나누는데요. 서로를 다독여주고 함께 기뻐하는 경험이 모이다 보니 어떤 회사보다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이 높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구성원들의 생일, 입사기념일 등을 챙겨주는데요. 그저 형식적인 축하가 아니라 전 직원이 생일을 맞은 구성원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 논의한 끝에 선물을 사서 주거든요.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까,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는 노력이 받는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더라고요. 그런 작은 활동 하나하나에서 소속감을 많이 느껴요. 회사에 다닐수록, 말뿐이 아닌 진짜 가족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런 회사라면 경영지원팀에서 일하는 게 특히 더 즐거울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행사를 담당해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회사는 앱을 개발하다 보니, 앱이 업그레이드 돼서 재배포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굉장히 큰 작업이예요. 얼마 전에는 그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포토월을 만들고 수행한 직원들의 책상 위에 꽃과 자필로 쓴 편지를 올려두었어요. 몇 개월간 수고했다는 의미로요. 그걸 본 직원들이 감동이라면서 SNS에 사진을 찍어 자랑하더라고요. 별 거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소소한 감동을 받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일을 제가 맡아서 한다는 게 너무 즐겁고 좋아요.
창업한 경험을 제외하면 히든트랙이 첫 직장인 셈인데 적응하기 어렵진 않았나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가 회사를 운영해 보니 기업에서는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좋은 결과를 단기간 내에 만들어 내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웃음) 사실 3개월은 수습 기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그저 업무에 적응하고 배우면서 흘려 보내긴 싫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선포했죠. “나 3개월간 일만 할 거니까 건들지 마!”라고요(웃음). 그래서 한동안은 정해진 업무 시간보다 2시간 가량을 더 일하고 갔어요. 덕분에 빠르게 업무를 익히고 적응하다 보니 자존감도 절로 높아지더라고요. 또 단순히 돈을 벌러 온 게 아니라, 정말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신뢰가 생기면서 서로 더 돈독해진 느낌이 들어요.
동구밭에서는 운영자였고 지금은 사원이에요. 일하는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회사를 운영할 땐 모든 분야를 체크하면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조금만 더’를 항상 되뇌다 보니 업무가 끝이 없었죠. 지금은 경영지원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회사를 운영할 때보다는 부담이 훨씬 덜한 편이에요. 그런데 다른 직원들보다는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면이 아직도 많아요.(웃음) 그래서 운영진들이 저를 더 편하게 대해주시는 거 같아요.
워킹맘으로 일하는 건 첫 경험일 텐데요. 엄마가 된 후, 일하면서 느끼는 장점이 있나요?
제 존재 자체가 어떤 구성원들에게 힘이 된다는 게 인사 담당자로서는 굉장한 강점이에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입사했다는 것 자체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와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씀하시는 직원이 있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맡길 데가 없거나, 집에 일이 생겨서 회사에 늦게 출근해야할 때마다 그동안은 결혼, 육아 경험이 없는 젊은 남자 직원들에게 이야기해야 했거든요. 회사에서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워킹맘이라면 스스로 ‘내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게 보일까?’라는 자기검열을 하기 마련인데, 저에게는 너무 편하게 말씀하세요.(웃음) 사정을 다 아니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요?
지금은 100세 시대인데, 평생 직원으로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내가 중심이 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5년마다 커리어를 바꿀 계획이에요.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거든요. 지금은 경영지원, 인사 업무를 하면서 조직문화로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경험하고 있다면, 다음 5년은 행정적인 업무를, 또 5년 뒤에는 마케팅을 하는 등 직무를 계속 바꿔서 일하고 싶어요.
임직원분들이 인터뷰 보고 연수님 떠날까봐 불안해 하시는 거 아니에요?(웃음)
이미 다 얘기 했어요.(웃음) 하나의 일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요. 이직을 하지 않고 회사 내에서 직무 변경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더 관심을 갖게 돼 좋더라고요.
원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세요?
그보다 환경설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실 저는 게으르고, 혼자만의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27년간 살면서 제가 저한테 많이 당했어요.(웃음) 그래서 이제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면, 그게 실현될 수 있는 환경에 저를 던져 버려요. 포토샵을 배우고 싶으면 포토샵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을 맡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일단 지르고 보는 거예요.(웃음) 그 환경에서 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일단 나를 던지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육아로 인해 경력 공백을 겪고,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효능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갑자기 결혼했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출산을 했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더 정신이 없는 거예요.(웃음) 그 와중에 학교에 가고 일도 하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더라고요. 나는 살림도 못하고, 아이도 못 보고, 일도 못 하고, 심지어 놀지도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사실 히든트랙에 입사하기 전, 2년간 우울증이 심했어요. 매일 울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명상을 시작했죠. 지금도 늘 하고 있는데, 이제 중독이 돼서 아기들 수면교육 하듯이 명상을 하지 않으면 잠이 안 와요. 제 수면의식이 된 셈이죠.(웃음) 육아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명상은 그 마음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또 육아를 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오디오북을 주로 듣는데요. 출퇴근할 때나 집안일을 하는 시간에 그냥 오디오북을 틀어 둬요. 그렇게만 해도 한달 평균 대략 15권 정도의 책을 읽더라고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할 수 있으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성취감이 느껴져서 정말 좋아요. 덕분에 육아하는 시간이 그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닌 것 같고, 점점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궁극적으로 연수님이 만들어가고 싶은 조직문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제가 요즘 전원주택에 꽂혔어요. 자연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사를 결심할 때 제일 걸리는 게 커리어더라고요. ‘서울을 벗어나서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차로 출근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해도, 육아를 하려면 집과 사무실이 가까워야 하는데 어떡하지?’ 같은 생각에 머뭇거리게 되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면 좋겠어요.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더 원격근무가 원활한 회사요. 그리고 번아웃이 됐을 때 언제든 “3개월만 쉬고 올게요”를 정말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회사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언젠가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고,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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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다양한 매체에서 글이 중심이 된 콘텐츠를 제작했다. 독립잡지 <나이이즘>의 에디터로 참여했고, <채널예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