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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데아 Jul 02. 2020

워킹 파파, 경단녀를 구해줘

경단녀. 그게 내 얘기였다니.

'경단녀'

뜬구름 잡는 듯 기사에서나 보던 단어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


프리로 일하는 나는 오래 쉬면 쉴수록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최대한 길게 쉬어도 3개월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제일 기대한 것은 남편의 육아휴직이다. 남편의 회사는 공공기관으로 비교적 복지가 잘 되어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정책을 곧 잘 사원들에게 장려했다. 남편이 육아휴직만 써준다면 나는 금방 일을 시작할 수 있고, 아이도 충분히 우리 부부와 지내다 어린이집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상상일 뿐이었다.


육아휴직을 회사에서 꺼낸 순간 남편은 상사의 비판을 들었다. 비단 회사의 강압적인 반대만은 아니었다. 남편 스스로도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애를 본다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래도 일은 남자가 하고 여자는 애를 보는 게 좋지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반대를 했을 때도 남편이 내심 안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결국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코로나 19로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않는 마당에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결정하기 쉽지 않다. 안 그래도 힘든 나에게 남편은 "어린이집 가면 애가 자주 아플 수도 있는데 보내도 괜찮아?"라며 일을 시작하려는 나의 죄의식을 한껏 끌어올렸다.


남편은 당연히 회사를 다녀야 하고, 나는 당연히 아이를 봐야 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 같아 슬프다. 머릿속에는 이럴 거면 대학은 왜 나왔지. 이럴 거면 공부는 왜 했지. 이럴 거면 왜 치열하게 살았지 등등 생각들이 떠나질 않았다. 새삼 프리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밀려온다.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들이 오가지만 나에게 선택지는 없다.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 있는데 이미 한쪽은 높은 철창으로 굳게 닫혀있고, 너무 내키지 않은 한쪽 길만이 웃으며 나를 반기고 있다.


주변의 상황도 나의 선택을 더욱 위축시킨다. 결혼한 부부 중에서 대부분 여성이 일을 그만두거나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남성이 육아휴직에 들어간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드센 여자, 모성애가 없는 여자로 비치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을 함부로 누구에게도 보이기 어렵다.


가부장적인 우리네 사회가 많이 바뀌었고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여전히 남편은 바깥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의무감을 지고 있고 나는 내가 집에 애를 봐야 한다는 압박과 의무감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를 보는 동안 나는 일에 집중한다는 건 가부장의 틀에 갇힌 남편이나 나에게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워킹맘, 그 단어조차 나에게는 크나큰 사치가 되는 현실이다.  

언제쯤 워킹 파파가 등장해 경단녀들을 구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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