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사회에서 자라온 우리 아빠의 시선
나는 결혼을 하기에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닦달하는 부모님께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딸이 혼자 늙을까 걱정됐던 부모님은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시간이 지나 부모님께 남편과 결혼을 하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아빠의 입에서 나온 믿기지 않는 말
"결혼하면 집은 남자가 해오는 거지?"
맙소사. 우리 아빠 진짜 옛날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뻔뻔한 아빠보다 더 뻔뻔한 딸이므로, 남편과 돈을 정확히 반해주지 않으면 비혼을 고집하겠다고 말했고 결국 50:50으로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아빠는 모든 것이 결정 난 상황에서도 어떻게 남자가 집을 해오지 않느냐며 불만을 멈추지 못했다. 내 시대 때는 이런 건 남자가 했다고 말이다.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한다는 이 문화는 여성을 인격체보다는 일종의 재산으로 봤던 옛사람들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 같다. 내 딸을 줄테니까 남자는 집을 해와야지. 하지만 나에게는 통할 리가 없으니 아빠의 이 구닥다리 생각과 참 많이 싸우면서 결혼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엿본 부모님의 시대는 참으로 모두가 힘든 세상이었다. 젊었을 적 우리 부모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할 때도 넉넉지 못했는데, 그때도 아빠는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어떻게 혼자 감당했을지 그 시절의 아빠가 참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 없이 결혼한 엄마는 힘든 시집살이를 참고 견뎌야 했다. 엄마는 해외에 나가서 없는 아빠를 대신해 혼자 시부모님과 지냈다. 시부모님은 엄마에게 내 아들 돈으로 잘 먹고 잘 산다고 구박했고 전화 한 통이라도 하는 날에는 돈을 마음대로 썼다고 어린아이 혼내듯이 혼났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을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 같다. 돈 없으면 사회적인 남성성을 잃어버렸던 시대였다 보니 우리 아빠는 정말 돈을 벌어오는 것에 집착했었다. 재주 좋은 엄마가 일 할 기회가 생기면 아빠는 극단적으로 반대했다. 여자는 살림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는 정말 집안일만 하는 집사람이 됐고 그 과정에서 많이 아파했고 심한 우울증도 자주 겪었다.
하지만 이제 남자가 혼자 경제적 부담을 지는 시대도, 여자가 돈을 못 버는 시대도 지나고 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는데 우리 아빠는 여전히 그 옛날에 머물러 있다
요즘 같이 남편이나 나나 대체로 미래가 막막한 시기에 이런 순진한 사상이 통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셔야 할 부모님들이다 보니 이런 분들 앞에 서면 돈 없는 내가 낙오자가 된 것 같다는 시선이 느껴져 다들 결혼을 거부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없어져야 할 구닥다리 문화다. 이 오래된 가부장제를 탈피해야 남자든 여자든 결혼에 갖는 부담이 적어지지 않을까? 새삼 우리 아빠의 이 엄청난 압박을 다 견디고 극복한 남편이 참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