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독 더웠다. 장마도 평년보다 길었다. 기후 변화란 걸 체감하는 여름이었다. 한국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날뛰는 기후를 경험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급변하기 시작한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재빠르게 움직였고, 이 과정에서 경제, 사회, 환경, 윤리, 철학, 그리고 종교까지 다양한 영역이 영향을 받았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변덕스런 날씨의 연속으로 여겨지는 수준을 넘어 우리 삶에 체계적으로 위험을 끼치는 요인이 되었다(systemic risk).
<마니에르 드 부아르> 17호는 기후 온난화를 조명한다. 온난화라는 단어는 지구의 더워짐이 기후 위기의 본질이자, 이를 해결하는 것만이 지구의 미래를 지키는 방향임을 뜻한다. 1부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의 실태를 다루고, 2부에선 환경보전과 경제 개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담았다. 심해 채굴, 석탄, 플라스틱, 셰일 가스 등 지구를 오염시키는 원인은 다양하고, 민족과 국가 간 갈등의 양상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이후 3부와 4부는 지구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 말한다. 탄소 포집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경제 체제와 정치의 변화, 그리고 개인 및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역설한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는 독자의 사유를 넓힌다. 나의 사유는 일본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에 닿았다. 현재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소중립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사이토 고헤이에게 탄소 중립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위기를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탄소 중립에 대한 관심은 단기적 이윤 중심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혜를 입어왔던 글로벌 노스가 기후 위기 시대에도 자신의 번영을 위해 글로벌 사우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결정이라 지적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영속하는 한 기후위기는 해결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나아가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선 자본주의에 대한 재인식과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의 번영을 위해서다. 현 세대는 미래 세대의 균형 있는 번영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이를 위해선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현재 세대가 일정한 ‘한계’ 속에서 생활해야 얻을 수 있다. 한계가 작용하는 체제란 인간의 최소한의 삶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사회적 기초’와 지구의 ‘생태적 한계’ 속에 최대한 많은 인간이 포함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토 고헤이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선 불가능한 체제로 말한다. 글로벌 노스에 위치한 선진국은 지구의 한계를 크게 넘어선 소비 생활을 하고 있는 데 반해, 글로벌 사우스에 위치한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은 사회적 기초가 충족되지 않은 삶을 산다. 이는 심각한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동시에 불공정하다. 이에 고헤이는 ‘탈성장’을 주장한다. 탈성장을 추구하는 체제는 경제성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구의 한계를 유념하며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보장 확충, 그리고 여가 증대 등을 중시해 양적 성장보다 질적 발전을 추구한다. 이러한 고헤이의 의견은 공공자본의 개편과 자본의 이동을 요구한 마니에르 드 부아르 필진 일부의 생각과도 겹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마니에르 드 부아르> 17호를 꼭 읽어봤음 좋겠다. 기존의 지식과 통념을 넘어선 사유를 가능케하고, 표면상 드러나는 문제들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