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7첩 반상은 13,220원
시작은 마켓컬리에서 파는 벌꿀 우메보시였다. 불현듯 벌꿀 우메보시와 명란과 단 계란말이로 일본식 밥상을 차려 먹고 싶어졌는데, 그러면 쌀도 고시히카리여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집에서 어쩌다 쌀밥을 먹게 되면 오직 햇반에 의존하는 1인가구 세대주답게 나는 밥솥 하나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밥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줄 냄비조차 없었다. 뭔가를 하나 들일 때는 버릴 일부터 생각하는, 실패한 미니멀리즘 지향자이다 보니 언젠가 짐이 될 게 분명한 커다란 밥솥을 덜컥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 물색해 본 결과 일본 아마존에서 1인용 도자기 밥솥이라는 신통한 물건을 발견했다. 거의 요리하지 않는 사람이 쌀밥이라는 것을 짓게 해줄 문명의 이기 중 가장 콤팩트한 제품이라는 데 반론의 여지가 없어 결국 직구를 감행했다. 그다음엔 마켓컬리에서 파는 ‘한끼톡톡 고시히카리’란 것을 사 보았는데, 이게 열 팩이나 들어 있어 쓴 돈이 아쉽지 않으려면 꼼짝없이 열 번은 쌀밥을 지어야 하게 생겼다.
기왕 쌀밥을 먹을 거면 좋아하는 반찬을 일곱 개씩 차려 먹겠다는 사치스러운 발상은 주말에만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연달아 두 끼를 쌀밥으로는 먹지 못하는 글로벌한 식성의 소유자라, 그 일곱 가지 반찬이 남지 않도록 적잖이 머리를 굴려야 했다. 며칠 정도 묵혀도 괜찮은 것과 하루이틀 만에 먹어치워야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맛도 있어야 됐다. 가능하면 남지 않는 것, 남더라도 뒷처리가 간단한 것… 조건이 점점 붙다 보면 가격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만큼이나 나 혼자 먹고 치우는 데 드는 시간도 나한테는 소중하다. 그러면 식판을 하나 사서 밥도 반찬도 한데 몰아넣고 먹으면 될 텐데, 그건 또 모양이 안 나 싫었다. 결과적으로는 7첩 반상을 위한 그릇도 몇 점 더 구매하게 됐다. 이리하여 준비에만 배달 음식 일주일치에 달하는 돈을 쓴 셈인데, 집밥이 경제적이라는 것도 아무튼 집 나름이다.
목요일 저녁, 마켓컬리 장바구니를 채우다 문득 ‘이렇게 먹으면 한 끼에 얼마?’라는 질문과 맞닥뜨렸다. 그래서 계산해 봤다. 직접 만드는 것은 밥뿐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사 온 것이니 계산은 간단하다. 반찬 한 팩을 세 번에 나눠서 먹는다고 하면 한 팩 가격/3을 하면 된다. 이하부터는 요리 안 하는 1인가구 세대주가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한 분, 나트륨 과다 밥상의 사례를 보고 싶은 분, 마켓컬리 반찬 추천 받고 싶은 분에게 특히 유용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마켓컬리 ‘한끼톡톡 고시히카리’ 890원, 마켓컬리 ‘바삭하게 볶은 돌김자반’ 730원—직구한 솥은 불 조절도 필요없이 적정량의 물을 넣고 소리가 날 때까지 끓이기만 하면 밥이 뚝딱 될 것처럼 말했지만, 무경험자가 단번에 최적의 물 양과 뜸 들이기 시간을 마스터할 수 있을 만큼 세상사 만만하지 않다. 벌써 몇 번째 유사 쌀밥을 먹고 있는데 김자반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은 밥을 먹는 듯한 착각이 든다. 김자반은 작은 봉투에 든 것을 3회에 걸쳐 먹는데 정량이 어느 정도인지 늘 의심스러운 제품 중 하나다. 혹시 내가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건가…?
마켓컬리 ‘비움반찬 명엽채튀김’ 1,200원, 마켓컬리 ‘미자언니네 가지강정’ 1,400원—이 반찬들은 한 팩을 3-4회 나눠 먹을 수 있다. 눅눅해지지만 않으면 며칠 정도는 냉장 보관이 가능해 자주 주문한다. 나는 연근조림이나 멸치볶음도 이 단짠 반찬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데, 쌀밥을 먹는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식탁에 올라올 기본 찬인데도 그것들은 희한하게 맛있는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마켓컬리 ‘미자언니네 참깨소스 꽃맛살 샐러드’ 2,450원, 아이디어스 방울토마토 피클 1,180원—나의 밥상에는 꼭 상큼하고 신선한 것이 필요하다. 이 샐러드가 조금 비싼 것 같을 때에는 콘샐러드로도 대체 가능하다. 방울토마토 피클은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로도 먹어봤는데 나의 경우에는 피클 쪽이 더 오랫동안 안 질리고 신선하게 먹을 수 있었다. 돈만 내면 남이 대신 껍질을 까준 방울토마토를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아서 행복하다. 여름에는 아이디어스에서 방울토마토 바질에이드도 사 먹을 수 있다.
우메보시와 함께 쌀밥에 너무 먹고 싶었던 교토의 무 절임, 몰테일 배송료까지 포함해 4,000원, 마켓컬리 ‘진가네반찬 밥 비벼먹는 볶음김치’ 1,370원—교토를 못 간 지 한참인데, 교야사이로 만든 야채절임이 너무 먹고 싶어 웹을 뒤진 끝에 상미기한이 충분히 멀고 직구도 가능한 제품을 발견했다. 농산품이어서 인천공항 검역소에 문의까지 해야 했는데, 밀봉된 장아찌 제품은 통관에 문제없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입맛을 결정하는 데 가정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한다면, 김치를 담그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보니 김치를 잘 먹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자랐는데 볶음김치는 예외다. 맵고 짜고 기름지고 건강에도 나빠서 길티 플레저까지 선사하는 귀한 식품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은 메인 반찬—주로 계란, 두부 같은 단백질류—과도 궁합이 좋다.
이로써 나의 주말 7첩 반상을 구성하는 데 총 13,220원이 든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평일 점심 때 나가서 사 먹는 것보다도 비싸다.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를 켜놓고 시켜 먹는 맥도날드 세트보다도 비싸다. 나트륨과 탄수화물 과다라 건강에 좋을 리 없고, 나 한 사람이 예쁘게 먹겠다고 그릇을 열 개씩이나 꺼내 썼으니 환경친화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반찬 한두 가지가 애매하게 남으면 버리기 아깝다고[귀찮다고] 다른 것을 또 주문해서 영원히 냉장고를 비울 수 없게 된다는 것도 함정이다. 다만 팩에 있는 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는 것뿐이라 준비부터 먹고 치우는 것까지 딱 한 시간 만에 끝난다는 점, 먹고 싶은 것만 차려 쌀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을 수 있다는 점, 하여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밥을 차리고 치워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더 적은 노력으로 이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다—가끔 마라탕 집에 가서 13,220원을 써줘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벌꿀 우메보시는 아직 사지 못했다. 몇 주를 두고 먹더라도, 한 번에 39,000원을 내야 하는 반찬을 사려면 아무리 나라도 심사숙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