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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Jan 01. 2024

살아만 있어도 돈이 든다

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매거진 ≪무대책 퇴사자의 30일 생존기≫는 무대책 퇴사 후, 커리어 계획 혹은 무계획적 일상에 관해 30일간 쓰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전에 어떤 투잡 유튜버가, 부업이 자리 잡히기 전에는 절대 본업[회사]를 관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관해 말한 것이 지금껏 기억난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가 안 받게 되면 그저 0이 아니라, 다달이 나가는 고정 지출 때문에 실제로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최근 내가 겪고 있는 일이므로 기억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뇌리와 가슴에 아주 사무친다.


그렇더라도 나는 은행에서 뭔가가 결제되었다는 메시지가 날아올 때마다 그 숫자를 바라보며 생각할 뿐이다. 별다른 소비를 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먹고 자고 씻을 뿐인데, 살아만 있어도 돈이 드는구나. 내가 이 집에 존재하기만 할 뿐인데 하루 2만원, 3만원을 누군가에게 지불해야 하는구나. 

사지 멀쩡하고 지성과 분별력을 갖춘 성인이라면 마땅히 제 밥값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일반 상식과는 별개로, 내가 딱히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시기에조차 어쨌든 내 몸뚱이는 생존을 위해 온갖 자원을 필요로 한다. 


변변찮은 저축액이 줄어드는 것에 막연한 위기감을 느끼고 찾아본 바, 2023년 책정된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월 71만원이었다. 소득도 재산도 없는 1인 가구에게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액수이니 많이는 기대할 수 없겠으나 월 71만원……! 주거비를 최대한 제한다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생존이 가능한 비용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월세로 사는 비혼 1인 가구의 실제 생계비는 241만원이다. 물론 나의 실제 생계비도 이쪽에 더욱 가깝다. 아끼고 아낀다 해도 결국 숨 쉬고 밥 먹고 잠자는 데만 (주거비를 포함해) 200여 만원이 드는 셈이다. 


나는 “그냥 살아만 있어도 돈이 든다면, 그리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할 능력이나 의지가 반드시 요구된다면 그런 사회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종종 직면해 왔다. 이처럼 생각을 너무 깊이 하는 게 내 병의 근원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병적이고 똑똑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한 어떤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책을 써 세상에 내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어서 드러내 놓고 추천하기는 어렵다. 기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의견을 가질 권리, 거기에 동의하거나 반박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이 책은 직역체로 번역된 것이 아쉽긴 하나, 서문의 첫 줄부터 두괄식으로 퍽 깔끔하게 저자의 주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중심 생각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심각한 해악이라는 것이다. 그 생각은 상세히 옹호될 것이다. 


존재함, 즉 태어나서 사는 것이 인간에게 도리어 해악이 된다는 이 반직관적, 반출생적 주장은 총 7개의 장에 걸쳐 논증의 형식을 빌려 전개된다. 막연히 이러이러해서 존재는 나쁘다, 라고 말하는 대신 나름의 논리를 통해 예상되는 반대 주장을 논파하는 과정이 (어쩌면 주장의 내용 그 자체보다) 재미있다. 삶을 나름대로 긍정하는 사람에게조차 “실은 그게 당신의 생각보다 나쁘답니다” 라고 너무나 필사적으로 말하고 싶어 해서 이 사람은 어쩌다 이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본인의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나쁜 일을 겪게 되어 있으니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쁘다는 주장에는 틀림없이 동의가 되는 지점이 있다. 


한편으로 조던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이런 믿음에 대해정면으로 반박한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구에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아이를 낳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믿는다. 인류에 대한 이보다 더 병적인 태도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믿음이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전통에서 멀어졌는지를 증명하는 지표일 뿐이다. 


음…『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의 저자가 확실히 본인의 주장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에서 멀어지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재생산이나 저출산 이슈는 나의 관심사도, 전문 분야도 아니다. 다만 재생산에 관심 있는 누군가가 미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네가 살아 있는 1분, 1시간, 1일은 모조리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비용이 드는 중이고 남아 있는 네 삶의 대부분도 그 비용을 벌어서 치르는 데 소모될 것이다”라는 말만큼은 확실히, 모쪼록 상냥하게 해 주면 좋겠다. 아, 내가 더 어릴 때 누가 이 말을 내게 해 줬더라면.


원해서, 선택해서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변주된 나의 테마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남의 빈축을 살 극단적 주장을 펼칠 생각도 없긴 하나 비슷한 의견, 비슷한 고민, 비슷한 관점을 책에서 만나면 제법 위안이 된다.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다고 말하고 싶어 책을 쓰는 사람이 있고, 나뿐만 아닌 누구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용을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지불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그럭저럭 공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죽는 편이 낫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최근에는 거의 없다. 다만 나가서 돈을 벌지 않으면 내 몸뚱이의 쾌적한 상태 또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그렇다면 직업 활동이나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완벽하게 자유스러운 입장이 아님도 함께 깨달을 따름이다. 

먹고살려면 싫든 좋든 돈을 벌어야 한다. 직업은 무엇보다 생계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한다. 그리 생각하면 일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는 것과, 숨만 쉬면서 저축액을 야금야금 까먹는 것 중 어느 게 더 사치스러운 생활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나는 나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다가 반쯤은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것이니 이만하면 사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하기엔 너무 오래 살기도 했으려나. 

사진: UnsplashTowfiqu barbhu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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