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드림 hd books Oct 17. 2025
생활의 빛으로 빚은 서정, 박도수 시집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
박도수 저
면수 160쪽 | 사이즈 135*195 | ISBN 979-11-5634-656-2 | 03810
| 값 15,000원 | 2025년 09월 31일 출간 | 문학 | 시 |
문의
임영숙(편집부) 02)2612-5552
책 소개
박도수의 시집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는 한 사람의 생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삶의 이면에 남은 사랑과 회한, 그리고 다정한 기억들을 천천히 되짚는 여정이다. 시인은 예순다섯의 시선으로 가족과 사랑, 세월과 이별, 늦은 깨달음을 담담히 기록한다. 그의 시는 거창한 서사보다 일상의 숨결에서 빚어진 따뜻한 진실을 노래한다. 부모의 손길, 배우자의 미소, 자식과 손주의 웃음 속에 깃든 삶의 빛을 발견하며, 독자는 시인의 언어를 따라 자신 안의 잊힌 시간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시집의 언어는 조용하지만 깊고,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이 시인의 손끝에서 서정의 풍경으로 피어난다. 삶의 무게와 기쁨, 후회와 감사가 한 줄 시 속에서 교차하며, 그 모든 감정이 결국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되감는 회상집이자, 여전히 사랑을 배우고 있는 한 인간의 고백이다. 읽고 나면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무는 온기가 남는다 — 그것은 지나간 시간이 아닌, 지금도 계속 살아 있는 사랑의 증거다.
저자소개
1961년 전북 출생
안양대학교 정보통신공학 졸
현재 안성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 중
삶은 때로 너무 평범해서, 그 속에 스며든 아름다운 감정들을 무심코 지나치기 쉽습니다.
저는 그 조용한 떨림들, 작은 숨결처럼 지나가는 감정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삶의 조각들을 시로 묶었습니다.
이 시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고,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따뜻한 쉼이 되길 바랍니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박도수의 첫 번째 정규 앨범 10곡 “베이비 부머 인생 음악 story 1집”
차례
작가의 말 04
1부 고요한 나로 머무는 시간
그들의 인생, 나의 기도 14
박家의 글로벌 혈통 16
우리 강아지, 누구 새끼야? 18
위대한 가치의 판단 20
엄마의 향기 22
오색빛깔 금붕어 24
인생 윤회 26
아픈 손가락, 첫 손주 28
내 딸의 어깨 위에 핀 봄 30
기억 속에 머무는 법 32
지구 위에 남긴 사랑의 발자국 34
꿈 나 비 36
그대의 빈자리, 숨결의 무게 37
사위, 맥가이버 38
아버지, 그 이름을 부르면 40
황혼을 걷는 이름 42
나의 음원과의 첫 만남 44
안부 46
처음 우리 만났던 그곳으로 48
사랑이라는 전투 50
문득, 인생이 말을 걸다 52
외국 사위 54
인생 나침반 56
꿀순이가 준 것 58
옹조리는 사랑의 노래 59
이 세상 마지막 보고 싶은 것 60
사랑은 대물림 62
어느 별에서 왔니 64
그 거리, 그 자리 66
인연의 길 위에서 67
눈물바다 너머 환희 바다 68
엄마의 운동화 70
나이야가라 72
별무늬 빛 사랑 73
55년의 우정 74
생명의 초침 75
2부 시간 위에 그린 풍경
엄마의 바다 78
서리 낀 창문에 그린 아이 80
첫 노을, 첫 별 82
스러진 꽃잎의 노래 84
아빠, 오래 살아야 돼 86
사진 한 장 87
그날, 너를 안았을 때 88
그녀, 붉게 타오르다 89
편지 90
우리라는 이름으로 91
가장 따뜻한 길 92
바람결에 피어난 이름 93
네온 빛 사랑의 잔상 94
그리움은 아직 내 안에 95
절벽 위의 장미 96
그대 없는 밤 98
사랑, 두 얼굴의 바다 100
갈대, 그대라는 바람에 101
다스림의 지혜 102
열하의 열풍 104
박장금과의 눈치 전쟁 106
빛의 영혼 108
익숙함의 늪 110
열매, 당신과 걷는 길 112
그대를 위한 봄 113
하버지 티라노 114
멈춤과 시작 사이 116
행복 117
아내, 나의 등불 118
야식 120
삶도 때로는 비가 온다 122
잿빛 새벽의 속삭임 124
색채로 다가오는 세상 126
기억은 여전히 앉아 있다 127
블로그 시대의 딸에게 128
3부 사랑, 그 처음의 떨림
빨간 밀어 132
그대라는 문 앞에서 134
설레임 135
손끝에서 시작된 마법 136
그대라는 빛이 내 안에 피어날 때 137
여인의 향기 138
한밤의 요술잔치 140
사랑 141
노을빛 그대에게 142
사랑의 소리 143
침묵의 선율 144
계절의 아픔 145
눈새 146
밤의 찬가 148
그리움의 봄 149
나비의 서정 150
가위, 바위, 보 151
그대여, 바람결에 오소서 152
하늘 사랑 154
눈물의 송가 155
사랑, 그 시작의 울림 156
그 자리에 남겨진 시선 157
후기 158
출판사 서평
박도수 시집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
-시간을 되짚는 다정한 기록, 생활의 빛으로 빚은 서정
박도수의 첫 시집은 제목처럼 ‘거꾸로’ 흐르는 인생의 시계를 붙잡고, 지금-여기에서 과거를 더듬어 현재의 마음을 정리하는 회고의 서정으로 빛난다. 시인은 예순다섯의 지점에서 가족(부모·아내·딸·사위·손주), 사랑, 노동과 휴식, 병과 노쇠, 떠남과 돌아옴을 차분히 응시한다. “부모의 윤회”, “아픈 손가락, 첫 손주”, “엄마의 바다”에서 드러나듯, 이 시집의 핵은 ‘돌봄의 시간’과 ‘대물림되는 사랑’이다. 사랑은 화려한 감정이라기보다 “버거운 기쁨, 쓸쓸한 선택”으로 묘사되며, 그 짐을 기꺼이 지고 건너는 일상적 숭고가 조용한 울림을 만든다.
이 시집 1부는 ‘나’의 내밀한 생애사와 가족사를 통해 삶의 무게를 더는 동시에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고, 2부는 연륜의 시선으로 ‘풍경’을 걷는다. 나이아가라, 코네티컷, 공항, 오래된 골목과 커피숍, 비 내리는 창과 서리 끼는 유리—지명과 사물, 기상과 계절이 하나의 감각 지도(Map)를 이루며, 그 위에 그려지는 것은 결국 그리움의 등고선이다. 3부는 다시 ‘처음의 떨림’으로 회귀한다. “설레임”, “그대라는 문 앞에서”, “밤의 찬가” 같은 작품들은 젊은 날의 감각을 현재의 체온으로 재번역하며, 사랑을 감상적 도피가 아니라 생을 지탱하는 마지막 불씨로 복권한다.
언어는 장식보다 명료를 택한다. 구어체와 속담의 결을 살짝 섞고(“사랑이라는 전투”, “나이야가라”), 일상의 사물어(운동화, 사진 한 장, 국자, 티라노 장난감)를 상징의 축으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시는 난해한 은유 대신 ‘보이는 장면’으로 설득한다. 짧은 행갈이, 담백한 서술, 마지막 행의 절제된 명제형 문장이 많아 ‘시적 단문’을 통해 감정의 여운을 길게 남긴다. 유머와 온기 또한 이 시집의 중요한 색채다. “하버지 티라노”, “박장금과의 눈치 전쟁” 같은 시편은 현재 삶의 자기풍자와 생활감각으로 미소를 건네되, 그 뒤에 선희처럼 서 있는 배려와 연대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이미지의 계열은 일관된다. 바람·빛·노을·별·비·바다·갈대·장미—자연물의 스펙트럼이 계절성과 생애주기를 비유하는 매개로 반복 소환된다. ‘바람’은 관계의 기류, ‘빛’은 기억의 온기, ‘비’는 회한과 씻김, ‘사진’은 남겨진 사랑의 증거다. 이 상징들이 과도한 신비화로 흐르지 않는 것은, 언제나 현실의 온도—병원, 보험, 분유, 영상통화, 공항 이별—가 함께 배치되기 때문이다. 곧 박도수의 서정은 ‘상징의 높이’보다 ‘생활의 밀도’로 서 있다.
시적 정조(情調)는 따뜻함과 쓸쓸함이 맞물린 ‘melancholia’다. 지구 반대편에 흩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 영어 앞에서의 무력감, 부모에게 다 못 다한 효에 대한 늦은 후회가 차례로 지나가지만, 시는 체념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행복은 크게 웃는 날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는 조용한 따스함”이라는 통찰처럼, 이 시집은 ‘기억하는 일’을 곧 ‘살아내는 일’로 번역한다. 그래서 시집은 애도의 책이 아니라, 남은 날들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한 생활의 윤리를 제안하는 시집이 된다.
요컨대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는 ‘회고의 눈’으로 ‘일상의 체온’을 기록한 다정한 서정, 그리고 유머와 절제가 공존하는 생활시의 미학이다. 독자는 이 시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시간을 되짚고, 누군가의 얼굴—어머니의 운동화, 아버지의 새벽, 배우자의 기침, 손주의 웃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비로소 제목의 역행하는 시계가 의미하는 것, ‘뒤돌아봄이 곧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집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오래가는 방식으로 위로한다.
이번 시집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에 실린 몇 편을 소개한다.
연못가 뒤뚱뒤뚱 새끼오리들
엄마오리 꽁무니를 죽어라 쫓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세상사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어릴 땐 아프지 않길,
자랄 땐 바르게 크길,
성인이 되어선 세상의 중심에 서 주길 바랐다.
가정을 이루고 나선 손주를 안겨주길 바라고
그 손주 또한 무탈하게 자라길 바란다
부모의 마음은 계절 따라 멈춤이 없다.
이제 손주를 돌보는 내 나이에야 안다.
인생은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바람 같고,
간섭은 의미 없다는 걸.
그럼에도 덜 굽고, 덜 고단한 길을
내 자식이 걷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부모의 마지막 욕심일까.
자식들은 내 말을 흘려듣고
나는 서운하지만 탓할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
나는 잠시 그림자 되어 함께 걷는 길손일 뿐.
허나 죽는 날까지 자식 잘되길 바라는
이 우둔한 사랑은 멈추지 않겠지
그래서 부모란, 참으로 답답한 축복이다.
-‘그들의 인생, 나의 기도’ 전문
이 시는 인생의 순환 속에서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변함없이 이어지는지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첫 연에서 ‘연못가의 새끼오리들’을 바라보는 시인은 자연의 한 장면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사랑을 발견한다. 뒤뚱거리며 엄마오리를 따르는 새끼오리의 모습은 순수하고 본능적인 사랑의 상징이며, 시인은 그 광경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부모로서의 세월을 떠올린다. 이 장면은 자연 속 한 폭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깊은 정서적 근원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어서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시대와 세월을 넘어 이어지는지가 성찰된다.
‘어릴 땐 아프지 않길, 자랄 땐 바르게 크길’이라는 구절은 부모의 기도가 단순한 바람에서 인생의 철학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랑은 조건이 없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기대와 염려가 뒤섞여 있다. 자식이 가정을 꾸리고 손주를 낳을 때까지 이어지는 바람은, 부모의 마음이 결코 멈추지 않는 ‘계절 없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이는 인간의 사랑이 생물학적 관계를 넘어 세대 간 영적 유대의 형태로 지속된다는 점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연에서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순환적이면서도 숙명적인지를 깨닫는 통찰이 드러난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이라는 인식은 내려놓음의 지혜이자, 인간이 성숙해지는 순간의 고백이 된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자식 잘되길 바라는 이 우둔한 사랑’이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그 지혜조차 사랑의 본능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한다. 시인은 부모의 사랑을 ‘답답한 축복’이라 명명함으로써, 그 사랑의 역설적 본질—간섭과 염려, 기다림과 기도의 교차—을 정직하게 표현한다. 결국 이 시는 한 인간이 부모로서, 또 자식으로서, 생의 흐름 속에서 사랑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아름답고도 겸허한 기도문이 된다.
누굴 만날까, 인생의 또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내 안의 기대를 깨운다
낯선 길 위, 잊혔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이번 여행지기는 어떤 인연의 바람을 데리고 올까
스쳐가는 발걸음 속, 우연처럼 스며드는 이름들
때론 예고 없이 다가와, 삶의 결을 흔든다.
처음 마주한 눈빛의 낯섦도 이내 잔잔해지고
우린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물들어 간다
인연은 늘 머물지 않기에, 바람결에 스며드는
꽃가루처럼 지나간 뒤 에야 더욱 짙어 지는 것.
잠시 머물다 간 그 사람의 온기와 풍경은
내 마음 한 켠에서 오래도록 꽃잎처럼 피어난다.
-‘인연의 길 위에서’에서 전문
이 시 ‘인연의 길 위에서’는 삶의 여정을 ‘인연’이라는 주제로 풀어내며,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인간이 겪는 내면의 성장과 따스한 여운을 노래하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누굴 만날까’라는 설레는 물음을 던지며, 인생의 또 한 장이 열리는 순간을 여행에 비유한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신 안의 기대와 기억을 깨우는 내면의 여정으로 그려진다. 낯선 길 위에서 ‘잊혔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라는 구절은, 타인과의 만남이 곧 자기 자신을 되찾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시의 출발은 외부로 향한 발걸음이지만, 그 실상은 내면으로의 회귀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인연’이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어떤 인연의 바람을 데리고 올까’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인연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바람처럼 그려진다. 시인은 스쳐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스며드는 이름들을 통해, 삶이 예고 없이 변화하는 섬세한 결을 포착한다. ‘삶의 결을 흔든다’는 구절은 타인과의 만남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층을 진동시키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결국 인연은 ‘머물지 않기에’ 더욱 짙어지는 것이며, 덧없음 속에서 비로소 그 소중함이 드러난다.
마지막 연은 이별의 여운과 그로 인한 정서적 성숙을 담고 있다.
‘잠시 머물다 간 그 사람의 온기와 풍경은 / 내 마음 한 켠에서 오래도록 꽃잎처럼 피어난다’는 구절은, 인연이 비록 짧았더라도 그 흔적이 영원히 내면의 풍경으로 남는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슬픔이 아닌 ‘꽃잎’으로 변하는 순간, 인연은 완성된다. 이 시는 결국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인생의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물들이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잔잔하고도 서정적으로 일깨운다.
비 내리는 밤이면 차마 못 전한 마음
종이 위로 스며든다.
쑥스러운 말들에 피식 웃고
지우고 또 지운다.
결국 구겨진 편지 한 장
버렸으나 작은 불씨는 남는다.
그 온기가 빗소리 따라
그의 곁 어딘가를 걷는다.
말하지 못한 편지 한 통
내 마음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된다.
그래서
이 비 오는 밤이 좋다.
-‘편지’전문
이 시는 비 내리는 밤이라는 감성적 배경 속에서,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마음이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조용히 드러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시인은 비를 바라보며 과거 미완의 감정을 떠올린다. ‘차마 못 전한 마음’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사랑의 망설임을 상징하고, ‘종이 위로 스며든다’는 표현은 그 감정이 조용히, 그러나 진하게 마음 깊은 곳에 배어 있음을 보여준다. 지우고 또 지우는 반복적인 행위는 마음을 다듬는 과정이자, 감정의 진폭을 줄이며 체념과 그리움 사이를 오가는 내면의 심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시인은 그 미완의 편지를 단순한 후회로 남기지 않는다.
‘버렸으나 작은 불씨는 남는다’에서 보이듯,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따스한 잔향으로 남아 있다. 결국 ‘말하지 못한 편지’는 시인에게 아픔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된다. 전하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에 “이 비 오는 밤이 좋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그리움의 완화이자, 감정의 성숙을 받아들이는 평온한 인정으로 읽힌다.
노을 물든 산중턱
기쁨에 겨워 나는 달려갑니다
뭉게구름 속 스민 그대 얼굴
다시금 보고 싶어져서.
마음 한 켠 숨긴 꽃
언제 이슬 맺고 피어날까
구름에 얼굴 가린 채
애태우는 마음.
해 질 녘 연기처럼
그대 사라질까 두렵고
무심함에 가슴 저려도
하늘 뜻은 거스를 수 없네.
이 밤, 그대 꿈 언저리
한 송이 바람꽃 되어 스며듭니다.
-‘노을빛 그대에게’전문
노을빛 그대에게’는 ‘노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통해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이별의 아련함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노을 물든 산중턱’을 향해 달려가며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뭉게구름 속 스민 그대 얼굴’이라는 표현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사랑의 이미지를 그리며,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자연의 풍경 속에 녹아든다. 시 속의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리움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된다. ‘마음 한 켠 숨긴 꽃’은 아직 피어나지 못한 사랑의 상징이며,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간직한 애틋한 감정이기도 하다.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인은 사랑의 유한성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고백한다.
‘해 질 녘 연기처럼 그대 사라질까 두렵고’는 노을이 사라지는 순간의 덧없음을 사랑의 불안으로 치환한 표현이다. 하지만 시인은 결국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이별의 순간마저 자연의 순환 속 일부로 받아들인다. 마지막 연의 ‘그대 꿈 언저리 한 송이 바람꽃 되어 스며듭니다’는 시인의 사랑이 소유가 아닌 존재의 여운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결국, 사라짐 속에서도 지속되는 사랑의 기도이자, 이별 이후에도 마음속에 남는 한 사람의 따뜻한 흔적에 대한 노래가 된다.
어둠은 조용히
도시 어깨 위에 내려앉고,
가로등은 그리움의 불을 켜며
사람들은 고요 속에 스며든다.
세상은 멈췄으나
내 마음은 달빛처럼 창을 두드린다.
나는 멈춘 시간 위
애틋한 그리움 굴리는 자전거,
모든 것이 잠든 밤
내 안의 마지막 불씨, 사랑이었다.
어둠은 붓이 되어
사랑을 조용히 그린다.
-‘밤의 찬가’전문
‘밤의 찬가’는 밤이라는 정적의 공간 속에서 깨어 있는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초반부에서 시인은 ‘어둠’을 단순한 부재의 시간으로 그리지 않고, 도시를 감싸 안는 포근한 존재로 묘사한다. ‘가로등은 그리움의 불을 켜며 / 사람들은 고요 속에 스며든다’는 것은, 외로움이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내면으로 이끄는 통로임을 보여준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밤, 시인은 달빛처럼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리움을 느끼며, 그 감정 속에서 살아 있음의 온도를 발견한다.
후반부에서는 그리움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멈춘 시간 위 애틋한 그리움 굴리는 자전거’는 정지된 세계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내면의 감정을 상징한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밤, 화자 안에 여전히 타오르는 ‘마지막 불씨’는 사랑 그 자체이다. 마지막 구절 ‘어둠은 붓이 되어 / 사랑을 조용히 그린다’는, 밤이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예술로 변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시는 고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온기, 그리고 어둠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해지는 사랑의 빛을 찬미하는 ‘내면의 찬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박도수 시집 『거꾸로 가는 인생 시계』는 ‘되짚어봄’을 통해 ‘다시 건너감’에 이르는 서정의 궤적을 보여준다. 시인은 지나온 시간을 미화하지도, 절망으로 봉인하지도 않는다. 대신 생활의 세목을 하나하나 더듬어 현재의 체온으로 번역하며, 상실·후회·노쇠의 기미 속에서도 관계의 온도를 다시 세운다. 그 과정에서 기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하는 실용적 감각이 된다. 독자는 ‘돌아봄’이 곧 ‘앞으로 나아갈 힘’임을, 애도의 언어가 곧 생활의 윤리로 변환될 수 있음을 체험한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들은 과장보다 절제, 관념보다 장면을 택한다. 일상의 사물어와 자연의 이미지가 겹겹이 배치되어, 감정의 고저가 생경한 상징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 속에서 발생한다. 짧은 행갈이와 담백한 문장, 마지막 행의 명제적 수렴이 여운을 길게 끌어당기며, 곳곳의 미소와 자조가 정조의 과잉을 가라앉힌다. 그 결과 탄생한 정서는 따뜻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온(溫)한 멜랑콜리’로, 독자의 심박에 무리 없이 스며든다. 언어는 낮고 투명하지만, 그 낮음과 투명함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울림의 조건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미학은 한 사람의 생을 사사로운 기록으로 닫지 않고, ‘함께 사는 일’의 보편으로 확장한다. 시집은 화려한 구원의 약속 대신, 서로를 기억하고 돌보는 작은 실천이 삶을 지탱한다는 믿음을 건넨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위로의 문장집이기 이전에, 자신과 타자를 더 잘 사랑하기 위한 사용설명서에 가깝다. 읽고 나면 각자의 내면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나침반 하나가 생기고, 우리는 그 나침반으로 남은 날의 리듬과 보폭을 조정하게 된다. 그것이 이 시집이 오래 머무는 이유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질 결론이다.
-해드림출판사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