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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y 15. 2020

이상(李箱), 가장 모던하고 구질구질했던 사람

작가 이상(李箱)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전에도 몇 번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와 나는 우연히 양력 생일이 같다. 이런 별 거 없는 이유까지 더해서 난 묘하게 이상에 날 이입하곤 한다.


이상이 단순히 난해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시선은 이제는 예전처럼 크진 않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오감도는 일단 빼고) 찾다 보면 일반적인 문체로 쓰인 글도 꽤 있고 거기서 이상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시는 그러한데 소설의 경우 모던보이라는 별칭과는 달리 꽤나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감성이 오롯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다. <날개>는 이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경우고 다른 글들은 더 직설적이다. 특히 <종생기>에서는 한때 이상이 짝사랑했지만 이루어지는데 실패했다는 '정희'('이상이 쓴 게 아니었던 편지' 글 참고)를 이상을 좋아하고 매달리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다만 소설의 경우 픽션이 섞였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상 전집 중 시와 소설은 어느 정도 읽었는데 아직 수필은 한참 남았다. 그래서 이상의 수필 얘기를 하는 건 조심스럽다.

이상의 소설 <봉별기>에서는 그가 한때 연모했던 연인 금홍과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시를 살펴보면 조금 더 냉소적이고 자기 비판적인 시선이 들어간다. 또 자신의 이러한 처지에 대해 한탄하기도 한다. 특히 유심히 살펴보면 이별의 슬픔을 다루거나 더 나아가서 자신의 연인이 몸과 마음이 떠났음에도 뭘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다룬다. 그런 시에서 이상의 구질구질함을 빛을 발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이 시다.


    무제

                                                                                        이상


    선행하는 분망을 싣고 전차의앞창은

    내투사를막는데

    출분한안해의 귀가를알리는 '페리오드'의 대단원이었다.


    너는어찌하여 네소행을 지도에없는 지리에두고

    화판떨어진 줄거리 모양으로향료와 암호만을 휴대하고돌아왔음이냐.


    시계를보면 아무리하여도 일치하는 시일을 유인할수없고

    내것 아닌지문이 그득한데 육체가 무슨 조문을 내게 구형하겠느냐


    그러나 이곳에출구와 입구가 늘 개방된 네사사로운 휴게실이있으니

    내가분망중에라도 네거짓말을 적은편지를 '데스크'우에 놓아라.


이 시는 이상의 생전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시에서 화자는 귀가한 연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왔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 알지만 차마 캐묻지 못한다. 그 대신 ' 죄를 네가 알렸다' 식으로 구질구질하게 접근하게 된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다르게 표현한 시들이 참 많은데 각 시들이 나왔을 무렵 이상의 실제 삶과 비교해 보는 것이 이상 시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지독한 폐병의 관한 글이나 말년의 글들은 슬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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