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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소금 Feb 18. 2024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무관심해진 모순

최재천 교수님이 기후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추천해 주셔서 읽어 보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어렵고 많은 양의 과학 지식을 전달하고 있지만 저자가 탄탄한 구조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일반인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을만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것은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해야 할지 마음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참을 읽을 때까지도 이 책이 기후 위기와 뭔 상관인가 싶었는데, 책을 덮을 때 즈음 이해가 되었다. 우리의 과학은 대체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한 질문을 남겨주었다.


이 책은 생물 분류학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지만, 저자는 책을 쓰면서 알게 된 움벨트와 좁아져만 가는 생물 다양성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추가해서 전체적인 방향을 살짝 기울여놨다. 전체적인 내용도 조금씩 변경된 것 같고, 4부는 그런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 집중했는데, 그러다 보니 뭔가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있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운 상황을 솔직하게 담아낸 것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움벨트 - 환경,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로 생물학자들에게 지각된 세계,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종의 기원과 진화


책의 많은 부분은 칼롤루스 린나이우스부터 다윈을 거쳐서 저자가 일했던 실험실에서 단백질을 통해서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에 대해서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 진화에 대해서 조금은 더 깊게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해설하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자연을 이해하려 노력하던 과학자 할배들의 일생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자연과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관찰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꾸준히 도전했으며 그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과학적으로 아주 과학적으로 버섯은 식물보다는 동물과 더 가깝다고 한다. 생김새는 식물 같지만 DNA의 유사성을 살펴볼 때 과학적으로 사자와 더 가깝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폐를 가지고 있는 폐어라는 물고기 역시 다른 물고기와는 다르게 육지의 소와 더 가까운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이해할 때 물고기라는 것은 없다. 종이라는 것 역시 정의할 수도 없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종이라는 것도 없다.

DNA를 포함한 다양한 발견과 기술을 바탕으로 생명 과학은 급진적으로 발전했다. 많은 질병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mRNA 같은 기술을 사용해서 코로나 백신을 만들기도 하였다. 관찰과 가설 그리고 증명의 굴레는 기술의 힘을 빌려 더욱 힘차게 돌아갔고 과학은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하는 것 같다.


너무 늦지 않게 자연으로 돌아가길


매일 발표되는 놀라운 과학 기사를 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는 불치병과 새로운 질병 그리고 현대 의학의 다양한 부작용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지구 생태계의 종 다양성 문제 등에서도 과학은 힘을 못쓰는 것 같고,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과학은 더 발달하고 있지만, 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고 있고, 우리는 자연과 더 멀어지고 있다.


과학을 탓하거나 잘못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생명체는 4개의 염기쌍의 조합으로 기록될 것이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완벽히 통제된 환경에서 살아가길 원하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움벨트, 우리가 창조해낸 브랜드와 가상 환경 속으로 좁혀져 갈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그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무관심해진 모순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학의 한계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물고기도 없고, 종도 없다는 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의미도 전부 바꿔야 할까? 물고기 요리라는 표현을 없애고, 인종 차별이라는 단어도 바꾸고, 성별이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일까? 유전적으로 진화 관점에서 원숭이보다 우리가 존엄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의 업적과 성취, 정리된 사실 관계를 부정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계 속에서 밝혀진 사실들이 우리의 가치관과 도덕관념 등에 무분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과학을 통해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보존하면 좋을 텐데, 더 큰 무관심과 오만으로 인류의 성취를 과신하면서 환경과 사회에 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연에 이름을 붙이는 노력은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다. 자의는 아니겠지만, 과학은 발전하면서 그 노력을 무력화했고, 사람들은 자연을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처럼 내팽개쳤다. 아주 비슷하게 과학은 우주 시대를 꿈꾸게 하고 화성으로 이주를 준비하도록 만들면서, 지구가 무참히 망가지는 상황에서 인류의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있다.


과학을 좋아하고, 더 알고 싶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더 겸손해진다. 과학을 안다면, 진정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내가 아는 과학자들은 모두 과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고, 겸손하게 과학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과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견강부회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도 남겨지는 질문과 고민이 독후감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절절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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