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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소묘 Apr 06. 2023

서로가 서로를 먹을 때

_저주 토끼/ 정보라

‘나를 풀어주시오’ 하고 딸이 외친다.

여기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여우 목도리를 선물 받고 행복해하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놓은 덫에 찢겨 죽었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딸은 삶의 모든 것을 체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방법은 ‘순종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하실 구석에서 무감각하고 창백한 얼굴로 외로이 울던 딸은 아들의 먹이로 방치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한 도구가 된다. 아버지의 사회적 도구로 그 지위를 누리던 아들도 결국에는 아버지의 먹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야기 속 아버지는 더 많은 사회적 인정을 위해 가족을 이용하고 궁지로 내몬다. 사회의 관습이라는 굴레를 이용해 가족을 밟고 선다. 경제적 우위와 사회적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가족을 짓밟는다. 그것은 ‘사랑이 한 일’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을 것이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에 있는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다.’라는 문장을 배경으로 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에 실패한 아들은 가족을 떠난다. 맹목적이고, 비정한 사회의 평가에 매몰된 아버지로부터 도망친다.

 아버지의 난도질과 자본주의 칼날에 죽어가는 딸은 외친다.

‘나를 풀어 주시오’

후에 딸은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 아버지와 아들에게 복수한다.



 ‘나를 풀어 주시오’  
아버지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족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이란 무엇이고 가족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인 개개인을 객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가 종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선시대 이야기 아닌가. 유교, 가부장제,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지금 적용하기에는 너무 옛날이야기 같아.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란.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현실을 제대로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의 말이다. 이것은 숨겨진 사실이며 여전히 유효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유교적 성향은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주된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여성은 남성을 섬기고 종속되는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구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적, 사회 활동적 측면에서 여성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부분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좀 더 근원적인 우리의 행복과 가족 간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와 유교적 사고 측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이 남성의 종속물이라는 사고 설정의 불합리성이다. 그러한 사회적 교육과 체계 속에서 여성은 주체적인 삶의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는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은 맹목적으로 부모의 말을 수용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오롯이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면 가족의 울타리가 아무리 따뜻할지라도 그것이 ‘덫’으로 느껴질 뿐이다. 결국은 자신을 옭아맨 ‘덫’을 빠져나가는 것에 영혼을 낭비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공허감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 ‘덫’은 어머니와 딸뿐 아니라 아버지도 아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주어 결국은 파국을 불러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들은 사회적 관습이라는 의식하지 못한 ‘덫’의 지시로 결국 모두 서로를 먹이로 이용하다 서글픈 파탄을 맞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덫’을 인식하는 일을 해야 하는 과정 속에 있다.      

 2022년 정보라 작가는 소설집 ‘저주 토끼’로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문학상인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2016년 ‘부커 국제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덕분에 부커상은 우리에게 친밀해졌다. 정보라 작가가 최종적으로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후보로 선정된 덕분에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라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의 단편소설 집 ‘저주토끼’는 호러물로 가득하다.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어내리다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쓸쓸한 인간들의 모습에 슬며시 우리를 투영해 본다. 아쉬운 마음에 권선징악을 바라고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다. 현실은 호러보다 더 호러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여기 쓸쓸한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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