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복귀'라는 소박한 목표를 위해 기꺼이 '정치적'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에서...
나는, 나라도, 현재 두려움에 떨고 있을 한 명의 성폭력 피해생존자에게 집중해도 괜찮겠지. 그것이 옳겠지.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그녀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좀 더 잘 살아 보자고 만들어진 공동체이니까.
누구나 알만한 한 명의 정치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평소 같으면 성폭력 사건과 그의 죽음으로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그의 죽음도 그러한데,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세상 말로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가 그 여성의 현재 심경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어마어마한 공포,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이라는 추측 해 본다. 내가 '꼴랑' 학자들의 모임인 학회에서 성추행과 2차 가해를 겪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졌을 때 내가 느꼈던 양가감정은,
통쾌함, 그러나 바로 뒤따라 오는 서늘한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퇴근길 어두운 골목에서 혹시나 누가 해코지 하러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한동안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어딜 가나 들을 수 있었던 2차 가해자에 대한 소식에 얼굴 근육이 굳는 것은 일상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명함을 나누는데 상대방이 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 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었다.
나와 그 교수와 같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권력과 지위의 차이 때문에 이러한 두려움을 느꼈는데, 하물며 유명 정치인이라니!!! 더구나 그가 자살을 했다니!!!
여전히 포털의 댓글창에는 2차 가해 댓글들이 보인다.
"10년이나 지나서 왜?", "문정부 때는 왜 참았나", "돈 떨어졌구나", "호텔방에 왜 따라 들어가", "어디서 사주를 받았겠지", "왜 하필 이 시점에?", "정치적 의도가 있구나" 등등.
나는 그녀를 전혀 모르지만 아마도 공소시효의 만료가 다가온다는 것이 가장 큰 동기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해도!!! 저런 쓰레기 같은 댓글에는 이렇게 맞서고 싶다.
왜 피해자가 어린이처럼 무해하고, 순수하기를 기대하는가? 성인에게 무해한 순수함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진대, 왜 성폭력 피해자는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가? 왜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의 진위가 의심되는가? 왜 피해자는 '정치적'이면 안되는가?
정치학 수업의 첫 시간에 많이 언급되는 데이비드 이스턴이 정의한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또 막스 베버가 정의한 정치는, "국가들 사이에서든, 한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직업으로서의 정치」 전성우 역. 2020)"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또한 맥락에 따라서 '정치적'이란 말은 순수하지 못하게 속셈이 따로 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매우 잘한다는 의미로 '정치적이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성인인 피해자는 당연히! 정치적일 수 있다. 아니, 나는 피해자들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보다 강하고, 피해자보다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피해자보다 (많은 경우) 부유하고, 피해자보다 사회적 경험이 많은 가해자와 그의 옹호세력과 맞서 싸우고 2차 가해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피해자는 더욱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자신이 끌어올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자본을 갖고 싸워야 한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서 죽을힘을 다 해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하는 그 지난한 싸움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무해함, 순수함은 무력함일 뿐이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시기를 정치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싸움의 방법을 선택하고, 자신과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유능한 동지들을 구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전략을 짜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떠올려 보고 머리 터지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움직여야 한다. 즉, 성폭력 가해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피해자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 걸고 싸워서 피해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소박한 목표이다.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모든 행위를 '정치적(가치를 추구하고/권력에 참여하고/권력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권력을 획득하고/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사회질서를 바로잡는)'으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사회생활을 잘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
여론을 이용할 수도 있고 지인의 권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피해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가장 큰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진심 어린 사과일 수도 있고 높은 액수의 보상금일 수도 있고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활할 수도 있고 비굴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야 할때 당연히 그렇게 하듯이.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치적일 수 있다. 아니, 정치적이어야 한다.
나도 그랬고 수많은 다른 피해생존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번 피해자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다른 피해자의 손을 잡고 함께 우뚝 설 수 있는 피해생존자가 되기를 멀리서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