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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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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Oct 09. 2024

절필합니다

240920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더는 일상을 남발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을 넓히고 경험을 보탠 후 세련된 글을 쓸게요.


애정하는 작가님이 계신다. 매주 목요일 연재한다. 발행을 기다린다. 감감무소식이다. 연락드린다. 답장을 받는다. 절필이라니. 억장이 후드득. 부서진다. 고개를 끄덕인다. 밥벌이는 지겹다. 노동하는 글은 고단하다. 매일 지어 외려 게으르다. 머릿속으로 문장을 천천히 굴리는 맛. 혓바닥 위 사탕처럼 진득한 단물이 빠진다. 타자 연습으로 전락한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해법을 모색한다. 성실한 산울림을 듣는다. 부산국제영화제다. 지아장커 감독이다. <풍류일대>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다. 발화는 로봇 몫이다. 갇힌, 묶인. 마스크를 벗는다. 입꼬리를 애써 올린다. 느린 호흡 사이 상념이 스민다. 뒤통수를 곱씹는다. 귀갓길이었다. 사상역 방면 버스였다. 시야에 노인이 가득했다. 면전은 할아버지였다. 흐릿한 머리칼 땀에 절어, 모자 아래 갸름히 빠지고, 목덜미 사마귀 두둘두둘 돋는데, 늘어진 목주름이 귀에 잔뜩 걸렸다. 저녁볕이 비스듬히 날았다. 왼쪽 뺨에 꽂혔다. 멍하니, 황금빛 난연한 반신을 응시했다. 순전한 사랑을 의문했다. 소름이 돋았다. 미는 탐하기 쉽지만, 추는 더듬기 어려워서.


이야기의 힘을 생각한다. 만원에 짜증스레 스칠, 생판 모를 검버섯까지 살피는 일. 늙거나 낡아갈 우리를 귀애할 길. 바랜 필름을 지나, 출렁이는 페리를 타고, 철저한 일상에서 다시 만난 지난 인연. 꽃빵에 눈물 삼키고, 기꺼이 무릎 꿇으며, 신발끈 묶어 주어도, 스스로를 더욱 단단히 동여매는 마지막까지. 시선에 애정이 꾹꾹 담긴다. 상대를 완벽히 알고자 품을 들이는 행위가 사랑이라면. 누군가의 인생을 아주 천천히, 이해하고 싶어진다.


오래도록 기다렸어요.


텍스트를 온전히 해석할 사람을.


아무도 내 글을 모르면 좋겠다. 모두가 내 글을 알면 좋겠다. 사랑하고 싶다는 외침, 사랑받고 싶다는 아우성. 모조리 읽히고 싶은 욕망을 숨긴다. 불가결한 문장을 지으려 애쓴다. 거품만 나온다. 푸스스 꺼진다. 단출한 밑천이 드러난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하려면. 세상을 입체로 만들려면. 빈 수레로 떠들기 한계다. 쌓아야겠다. 무르익을 때까지. 넘쳐흐를 때까지. 더는 견딜 수 없어, 펑, 터질 때까지. 함께 새살을 채우자.


당신의 복귀를 소망한다.


240316
1.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그런데…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닳아 해지고 몸도 그렇게 되지.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시점이 오고 다가오는 이들이 훨씬 적어진단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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