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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an 03. 2024

작가님, 제가 할까요?

교정교열가는 무엇을 고칠까?

서어나무 님은 자기를 작가는 아니라고 소개했다. 채팅으로 한 말인데도 여러 군데 찍은 말 줄임표가 발끝만 딛고 걷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꼬박꼬박 작가님이라고 부르니까 더욱더. ‘나도 작가 아닌데, 교정교열가인데…’하며 약간 사기꾼이 된 기분으로 그의 편지글을 읽었다.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한데 무엇이 부족한지 몰라서 헤매고 있어요. 작가님께서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에세이 느낌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꼭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서 욕심을 부렸는데... 에세이 문체로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고민이에요. 두 번째는 글 중에 가장 잘 쓰고 싶은 부분이에요. 주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수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에서 수줍음이 엿보이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친절을 베풀면서도 자기를 퍽 낮추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자꾸 맘을 쓰게 된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한지 몰라서 헤매고 있다’니, 내가 쓸데없는 간섭을 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글만 보고 싶은데, 그 부족함을 채우려면 내가 글쓴이가 된 듯 빠져들어야 하니 말이다. 글 속에서 글쓴이가 멍들면 나도 멍든다는 뜻이다. 결정을 미루면서 다음 글을 읽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작업하시는 데 편하시도록 정보 몇 자 올립니다...^^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 퇴소 후 홀로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저는 자립준비청년이고요. 자립준비청년으로서 홀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고 있습니다.」     


앗, 궁금해지고 말았다. 자립준비청년이라면 내가 전혀 모르는 청년이다. 나는 어느새 새로운 이야기에 까무룩 홀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은 어떨까? 

 

재빨리 서어나무 님의 원고 파일을 열었다. 생각한 대로 누구한테 들었거나 남의 글을 보고 쓴 가짜 글이 아니었다. 글에 글쓴이가 살아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보고 있자니, 맘이 바빠졌다. 나는 남은 원고를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답장했다. 이제라도 서어나무 님이 정신을 차리고 다른 교정교열가를 찾으면 안 되니까! 

    

「먼저 저는 계속 작가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작가라고 다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을 쓰는 분이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받아주세요. 안내한 비용과 작업 기간이 마음에 든다면, 제가 맡아서 더 좋은 글로 다듬고 싶습니다. 작가님, 제가 할까요?」


글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글이라면 나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고쳐줄 수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경험은 내가 흉내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말과 글로 들려주면 좋겠다. 글로나마 다른 삶을 들여다보고, 지혜를 구할 수 있게.


지금부터 자립준비청년의 삶을 들여다 보자. 그리고 그의 삶이 또다른 세계에 닿을 수 있게 내가 열심히 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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