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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바늘 Nov 08. 2023

01. 싫은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불불행한 삶을 향해

  이 이야기는 세상에 싫은 것이 너무 많아서 불행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살아야지'라는 말만 봐도 짜증이 솟구치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는 사람, 하루가 스트레스 투성이라 늘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내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이 글을 쓴 목적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 나는 계속해서 싫은 것들에 대해 쓸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이 부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좋은 것들보다 우리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싫은 것들을 분석하여 결과적으로 불행하지 않게 살기 위한 것이다.


  이 글들은 나의 통찰이라기 보다는 내가 공부한 결과물이다. 나도 아직 세상에 싫은게 너무나 많고 자주 불행한 사람이기에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여둔다.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
1. 대한민국은 행복보다 불행에 가깝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23년 기준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51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는 끝에서 4번째를 기록했다.   2018~2020년 통계를 바탕으로 조사한 자살률의 경우 10만 명당 24.1명으로 단연 1위이다. 보수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OECD 회원국(모든 회원국이 ‘선진국’으로 불리는 것도 아닌) 중에서는 꽤 불행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행복’할 방법보다는 불행하지 않을 방법을 말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행복보다 불행에 더 가까운 대한민국의 하루하루를 즉 나의 하루하루를 조금이나마 덜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이 글을 써본다.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
2. 싫은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력하다.


  싫은 것은 좋은 것보다 강력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고 활력 있게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화나고 짜증 나고 피곤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힘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일에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더 개인적인 일처럼 경험하고 더 깊게 느낀다.

“부정적인 사건은 내측 전전두피질에서 긍정적인 사건에 비해 훨씬 활발한 자기 참조 활동을 유발하고, 내장감각 감지를 담당하는 섬엽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편도체와 해마에서도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 우울할 땐 뇌과학, 엘릭스 코브-

  사람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르지만, 대체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사건을 1가지 겪을 때마다 긍정적인 사건을 3번은 겪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나처럼 생각이 많거나 예민하거나 뇌가 긍정적인 일 자체를 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긍정적인 사건의 비율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
3.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나를 타인과 구분한다.


  남들과 구분되는 ‘나’라는 특징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으로 명확해진다. 좋아하는 것은 쉽게 늘어나고 바뀌지만 싫어하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박혀 잘 바뀌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수양 도구인 '에니어그램'에서는 인간을 그 본성에 따라 9가지로 구분하는데, 이때 구분의 기준이 바로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다. 에니어그램에서 인간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면 죽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시작되어 특정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 두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욕망은 좋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에니어그램은 우리가 싫다고 느껴겨지는 것들로 유형을 구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5번 유형은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 무식한 사람이 되면 죽을까 봐 두려워서 유능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로 인해 지식을 탐닉하고 똑똑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탐구하는 즐거움은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지만 지식이 없으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5번 유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5번 유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유형이 두려워하는 부분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6번 유형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6번 유형이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러한 성격 도구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싫은 것이 나를 남과 구분하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서로를 설득하며 함께 일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과 타인의 도움 없이 고립되어 일하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 일하는 것도 좋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도 좋은 사람은 꽤 많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휴일에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휴일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휴일에 집에 있어도 좋고 밖에 나가는 것도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
4.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싫은 것들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우리의 10대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아마도 친구를 사귀는 힘든 과정보다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더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친구 사귀기에 공통점 찾기만큼 빠른 길은 없으니, 우리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서로 연예인이든 게임이든 스포츠든 함께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같은 것을 좋아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강하게 둘을 결속시키는 것은 같은 것을 싫어할 때였다. 둘 다 공부를 싫어할 때, 같은 친구를 싫어할 때, 오늘 급식 메뉴를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어할 때, 친구와 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강력하게 연결된 관계가 된다.

  

 연인 관계에서는 이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싫어하는 것도 같고 좋아하는 것도 같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겠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럴 때에는 싫어하는 것이 같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예를 들어 둘 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 명은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한 명은 극장에 가야 하는 것은 정말 싫어한다면, 둘은 결국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늘 불편한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영화를 싫어한다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안 보면 될 것이다. 간단히 영화로 예를 들었지만, 결국 절실히 싫어하는 것들은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큰 갈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
5. 결국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불행하지 않게 사는 법, 그러니까 행복이 아니라 불불행한 사는 법에 대해 쓰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지도 않았고, 놀라울 만큼 많은 수입을 얻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누가 봐도 존경할 만한 고난을 극복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 있는 것이 있는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아주 깊은 슬픔과 고통과 불행을 느꼈다는 점이다. 또한 싫어하는 것의 개수와 강도도 자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이것들은 나를 한층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나는 우울하고 힘든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만큼이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도 불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 주제에 대해 쓰고자 한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싫은 것이 이렇게나 많은 세상이기에 불행을 받아들이고 그냥 버티고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대체 내 꿈은 무엇인지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싫은 것이 많아 불행한 우리들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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