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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디자인 Apr 25. 2019

xs메이커 ①-전산

월간 <디자인> 2019년 5월호

서른도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 이 신에서 가장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디자이너이자 제작자다. 공사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전산시스템이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나무와 철을 조합한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jeonsan




전산의 파주 작업실.


목수로 일했던 남다른 이력이 눈길을 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대안학교를 다니는 등 어릴 적부터 남다른 방식으로 진로를 모색했는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원하셨던 부모님 덕분이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 초반부터 공사 현장에서 목수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월 400만~500만 원씩 벌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꽤 큰 수익이었지만 3~4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갈증 같은 게 느껴졌다. 남들이 친 도면을 그대로 따르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너무 일찍 진로를 결정해버린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결국 검정고시를 치르고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이하 PaTI)였고 한배곳 1기생으로 진학하게 됐다.


공사 현장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공사 현장의 목수 일은 지금 하는 디자인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조금 더 능숙하고 두려움 없이 공구를 다루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PaTI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현재 가구나 공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목수라는 이력 때문인지 학교에서 가구나 집기 만드는 일을 자주 맡게 됐다. 아무래도 PaTI가 막 시작하던 때라 시설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하고 두 번째 들은 수업이 실크스크린 수업이었는데 강의실에 가보니 작업대가 없더라. 그래서 작업대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 했다.(웃음) 2학년 때까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었지만 3학년이 되어 필드에 나갈 생각을 하니까 워낙 뛰어난 디자이너가 많아 망설여졌다. 결국 내가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됐다.



PaTI 재학 시절 제작한 작업대.



2017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포스터 속 의자가 전산의 작품인 것으로 안다.  

사실 그 의자는 PaTI의 과제로 제작했던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돈이 없어 늘 버려진 자재를 주워 작업했는데 우연히 이화여대에서 강의실 의자 몇백 개를 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로 과제를 하면 좋겠다’ 싶어 잔뜩 짊어지고 왔다. 각 의자를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 콘셉트였는데 당시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김영나가 이 작품을 포스터에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프레임 가구 시리즈. 프로젝트 팀 채집여행과 협업해 버려진 가구에서 새로운 용도를 찾았다. 자전거 애호가나 식물 애호가 등 가구의 주인을 임의로 설정해 필요에 맞는 디자인을 했다.



PaTI 재학 시절 ‘송전동’이라는 팀도 결성했는데.  

당시 PaTI 규정상 재학생은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래픽보다는 공간에 더 관심이 있다 보니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나처럼 공간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둘(송재엽, 동준모)이 더 있었는데 ‘차라리 너희 셋이 회사를 하나 차리라’는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송전동이었다. 미스터리 유니온, 인덱스 등 공간 프로젝트와 <포스터 이슈>, 서울국제도서전 등 전시 연출 관련 일을 송전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사실 졸업 후 각자의 진로가 좀 더 명확해지면서 송전동의 활동은 다소 느슨해졌다. 해체까지는 아니지만.



졸업 작품으로 만든 설거지 차. 조립과 분리가 용이한 이동식 시설이다. 도시형 농부시장 ‘마르쉐’, 문화역서울 284 <평창의 봄>, 에이랜드 팝업 스토어 등에 소개됐다.



기억에 남는 클라이언트를 꼽자면?  

졸업 후 처음으로 (송전동이 아닌) 전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에이랜드가 기억에 남는다. 브루클린 매장의 공간을 설계하고 원투차차차가 제작한 스툴을 제외한 다른 가구를 디자인했다. 힘은 들었지만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에이랜드는 한국에서 가구와 집기를 전량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설치·조립만 하길 원했는데 부품을 배로 운송했기 때문에 나무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적도 부근을 지날 때 목재가 뒤틀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을 절곡해 만드는 조립형 가구를 구상했다. 한국은 철 가공 기술이 뛰어나고 시스템 또한 매우 정교하게 구축된 나라다. 평소 철을 다루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에이랜드 브루클린의 공간 디자인. 약 660m² 면적에 3층 구조의 매장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아트 디렉팅을 맡았고 원투차차차가 스툴을 디자인했다.



클라이언트들이 전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만만해서?(웃음) 앞으로도 클라이언트가 ‘만만한’ 디자이너로 봐주었으면 한다. 돈이 조금 부족할 때도 예산에 맞춰 제작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부담 되지 않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언젠가는 나만의 시그너처 같은 가구나 공간 톤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직 경험을 쌓아가는 단계라 특정한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다. 지금 집중하는 것은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재료 간에 최대한 합리적인 조합을 찾는다고 할까? 



티엠오 샵TMO Shop. 불도저프레스 양민영과 지난해 하반기 문화역서울 284에 위치한 티엠오 샵의 운영을 맡았다. 전산은 그림자 라인과 턱의 단면을 살린 가구를 제작해 공간을 



전산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지 2년이 흘렀다. 초기 작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구나 집기, 공간을 조금 더 단순하게 설계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주로 혼자 활동하다 보니 에너지를 분배하는 일이 중요하다. 송전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일에 대한 욕심이 커서 예산에 비해 너무 디테일하게 설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빨리 지치게 되더라. 나와 주변 사람들을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게 중요하다.


선호하는 소재나 작업 방식이 있다면?  

좋은 합판을 골라 오일 마감하는 것을 좋아한다. 철을 사용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용접이 들어가면 제작 단가가 높아지니까 그 대신 리베팅 기법을 적용한 조립식 집기를 만드는 편이다.


<커피사회>전에서 선보인 스몰 스토리지 시리즈도 흥미로웠다.  

동시에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라 처음부터 ‘딱 4일만 시간을 쓰자’고 기간을 정한 뒤 그에 맞는 결과물을 구상했다. 가장 빠르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합판에 오일 마감을 한 커피용품 수납함 에디션을 제안했다.



<커피사회>전을 위해 제작한 스몰 스토리지 시리즈. 나왕 합판에 오일로 마감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오늘날 xs메이커가 주목받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아닐까? 사진 속 배경이 중요해진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내 작업이 배경으로 소비되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나?  

예전에 일본의 한 디자인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한 발표자의 PPT에 “장인과 디자이너의 사이, 업계의 빈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저것이 바로 내 길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장인과 디자이너 중간의 빈틈을 파고들고 싶다. 



글: 최명환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월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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