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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Apr 09. 2020

책을 듣는 이유 세 가지

오디오북, 귀로 듣는 책의 신세계에 대하여


'콩나물이냐' 조롱받던 에어팟은 안 쓰는 사람 없는 ‘힙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덩달아 오디오 콘텐츠 시장도 커져 들을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음악은 물론 각종 온라인 강의, 팟캐스트... 그리고 오디오북.


오디오북은 에어팟을 사용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콘텐츠. 에어팟을 사면 힙한 음악이나 콘텐츠를 더 많이 접할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책이다. (오디오북 시장도 나날이 커지면서 힙해지고 있다!)


주로 읽기만 했던 책인데 귀로 듣는다니. 귀로 듣는 책에 익숙해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게 된다. 심지어 푹 빠졌다. (수년 전 외국 생활로 e북을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


그래서 준비한 내가 책을 듣는 이유 세 가지.


에어팟, 생활을 뒤흔든 신문물



오디오북을 접하기 전 무선 이어폰이라는 신문물에 먼저 매력을 느꼈다.


건조기, 대형 무선 청소기, 캡슐커피 머신, 스타일러... 최근 구입한 전자기기들(남편 담당)이 소리 소문 없이 내 삶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최고를 뽑자면 무선 이어폰, 에어팟이다.


지난해 에어팟이 인기라길래 에어팟2를 남편 생일 선물로 시험 삼아(미안) 샀다가 테스트 후 바로 내 생일선물로도 땡겨 받았다.


그저 선 하나 없는 건데 이렇게 편할 줄이야. 신세계였다. 어찌나 편한지 끼고 있는 걸 까먹고 귀가 후 씻을 때서야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음질도 좋음.


유무선을 떠나 가장 결정적으로 매력을 느꼈던 건 잭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폰X는 8핀 이어폰, 맥북은 3.5파이여서 두 개 이어폰을 번갈아 써야 했다. (그렇다, 난 앱등이) 변환 잭은 잃어버린 지 오래... 이렇게 난 또 애플의 노예가 되었다.


편해지니 하루 중 이어폰 사용률이 늘었다. 무언가를 듣고 있지 않는데도 끼고 있는 시간이 많다. 영화 <her>를 처음 봤을 때, 거리의 사람들 대부분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아무렇지 않게 혼자 중얼대며 돌아다니는 게 낯설었는데 이젠 내 일상이 됐다.



읽을 수 없다면 듣자


그럼, 왜 오디오북인가.


지난봄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에 복귀했다. 당시 경기 서남권에 살던 난 서울 동북부의 직장까지 광역버스와 전철을 타고 매일 왕복 4시간을 출퇴근했다. (지금은 GG치고 빚 잔뜩 내서 서울로 이사함)


길에 버리기 너무 아까운 시간이라 뭘 할까 고민하다 책을 읽었는데 멀미가 심해 강변북로를 달리던 광역버스에서 내려달라 애원할 뻔했다. 만원 출퇴근 전철에서 책을 꺼내 읽기도 쉽지 않았다.


음악만 듣기엔 시간이 너무 길었고 팟캐스트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정보 콘텐츠는 일과 중 틈틈이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책이었다.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오디오북 시장에 시동이 걸리고 전자책 시장이 한창 성장하던 때라 오디오북 광고를 우연히 접했다. 속는 셈 치고 하나 사 들어보았는데. 와우, 이 편리함과 고퀄 무엇.


손을 빼지 않고 책을 읽... 아니 들을 수 있다니 버스 멀미도 만원 전철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두 시간 출퇴근길에 진득하게 듣기에도 딱 좋았다.


무엇보다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일 하느라 눈 피로가 대단했다. 시큰거리고 눈물도 자주 새 나왔다. 자는 시간 외에도 눈을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눈을 감고 책을 읽... 아니 들을 수 있다니. 웬 횡재인가.


읽을 때와는 다른 몰입 경험


무슨 책을 읽었냐면.


처음 '들은 책'은 미쉘 오바마의 <비커밍(becoming)>. 아이 둘을 낳고 오랜만에 일을, 그것도 새로운 업계이자 처음으로 이직한 회사에서 시작했을 때.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줄 롤모델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당시 한창 핫했던 책을 골랐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구입한 <비커밍> 오디오북은 배우 고수희가 낭독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역이었던 배우인데 그 이미지는 온 데 간데없는 세상 차분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책을 읽어주었다.



21시간 21분 분량의 책을 모두 듣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편도 2시간 남짓한 출퇴근 길에서만 틈틈이 들었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왜 미련하게 한 달 동안이나 듣고 앉아 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는데 이 한 달 동안 나는 행복했다. 자서전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특별한 삶을 대신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고수희 배우의 담담한 목소리로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난 다른 세상, 미쉘의 세상에 가 있었다.


감은 눈 앞에,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졌고 지금도 강렬한 잔상이 남아있다. 미쉘이 어린 시절 살던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 이층 집의 방 한 구석부터 드넓은 백악관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공간과 그곳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이 여전히 보인다. 귓가의 목소리도 진하게 남았다. 담담한 목소리로 고조와 격앙을 담아낸 고수희 배우 목소리가 아른아른 들려온다.


이어 여러 책을 오디오북으로 시도해봤는데 책을 기억하는 방식이 활자가 아닌 이미지라는 점에서 인문사회보다 문학책이 더 듣기 좋았다. 이래서 라디오 극장이 있는 건가 싶다. 흥미로운 드라마 다음 편을 기다리는 느낌. 아니 그보다 더 짜릿해서 매일 출퇴근 길이 기다려지고 행복했다. 출근길이 행복할 정도라면 말 다한 것 아닐까. 하핫


단점도 ㅇㅈ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우선 오래 걸린다. 하루면 다 읽을 소설책이 일주일 걸릴 때도 있다. 성격 급한 사람은 절대 못 들음. 난 책 읽는 속도가 빠른 편도 아니고 책을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 대체로 그러하지 않을까. 종종 일 때문에 빨리 봐야 하는 책은 읽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책들은 천천히 들으며 음미한다.


바로 메모가 어렵다. 오디오클립 앱을 주로 쓰는 이유가 메모 기능 때문인데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구간을 찍어 기록할 수 있게 디자인돼있기 때문. 몇 달 전만 해도 밀리의 서재나 윌라는 아예 메모 기능이 없거나 불편했다. 지금은 개선됐을지도.


사람을 타서 목소리에 따라 감동이 덜할 수도 있다. 난 첫 번째 책의 감동이 진해서 계속 오디오북을 시도하고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고수희 배우의 <비커밍>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처음부터 오디오북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경험했던 게 입덕 포인트가 됐다.


가끔 기계음을 듣기도 한다. 오디오북의 최대 단점은 수가 많지 않다는 것. 그나마 오디오클립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1만여 권이라고. 가끔 e북을 듣기도 한다. 기계음으로. 처음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익숙해졌... 여기서 또 한 번 떠오르는 영화 <her>. 굳이 이렇게까지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원하는 오디오북이 없다면 기계음으로 대체 가능하다. 기계음에도 익숙해지다니 이렇게 난 또 신기술과 한 몸이 되었구나.



써놓고 보니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 같아 민망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북을 듣는다면 당신은 천천히 듣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기는 낭만을 아는 사람.


오디오북과 오디오북 앱 큐레이션을 쓰려다 난 매일 써야 하니까 킵하고 오디오북을 접하게 된 이야기를 먼저 남겼다. 다음은 오디오북 & 앱 추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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