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노 저었던 한 주의 기록
그런 때가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아치는 때.
연락이 뜸하던 이가 소식을 전해오거나, '뭐 하나' 근황이 궁금했던 이가 갑자기 먼저 안부를 묻거나. 가까이 있지만 대화 나누기 어려웠던 이가 대화나 만남을 요청하거나.
4년 전 딱 한 번 만났던 이가 나의 노션 소개 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주었다. 공동창업, 비즈니스의 성장, 그리고 번아웃과 내려놓기. 그간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게 안타까울 정도로 비슷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나 오랜만에 만났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위로를 주고받았다.
기혼 유자녀 여성을 타깃으로 콘텐츠 비즈니스를 만들고 운영했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커리어 여정도 조금은 닮아있는 것 같았다. 일과 삶, 모두에서 반걸음이나마 먼저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기뻤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내 선택을 돌아보고 비록 더딜지라도 내가 가는 길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 됐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게 들어 기회를 찾고 있다. 두리번두리번.
일과 삶에서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 조직 밖 동료로부터 느닷없이 "나중에 같이 영화 만들자"라고 메시지가 왔을 땐, 무척 반가우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전날 안부 연락을 하려다 바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더랬다. (이렇게 에어드롭 되는 사이의 친구, 동료들이 몇 있는데 너무 신기하다) "그래요 그래요 나중에 꼭 만들자", "이거 만들어야 한 풀고 잘 죽을 거 같다" 답하면서 어쩐지 세한 느낌에 "잘 지내시냐" 물었다가 덜컥 만나게 됐다.
일과 육아를 모두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 앞에서 만나 자정이 넘어서까지. 캔맥(비록 무알콜 맥주였지만...)을 하나씩 나눠 마시며 빌런 얘길 하며 격해졌다가 핑크빛(?) 미래를 낙관하기도 하면서 오히려 기운 나는 한 주의 마무리를 누렸다.
주말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쓴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 온라인 간담회를 가졌다. '성범죄 피해 경험'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서로의 경험, 대처 방법, 그때의 고통, 회복 과정과 지금의 마음... 이런 것들을 진솔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얘기 나누며 '성범죄 피해자 다움'을 지워냈고, 가해자들의 엄중한 처벌과 피해자들의 온전한 회복을 위한 말과 글을 나누었다.
이런 때는 일에도 사람들이 몰아친다. 다른 때보다 협업과 미팅 그리고 스몰톡 양도 는다.
킥오프 하는 협업 프로젝트가 많은 주였다. 지난주 뭐에 홀린 것처럼 업무를 떠안았고, 지연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내가 이니셔티브 하는 업무가 아닐지라도 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업무에 손을 들고 나섰다. 필요한 일인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내가 함께하면 더 속도 있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한 업무들이었다. 그저 속도만 내려던 건 아니고, 향후 계획을 위해 성과 검증이 빠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멤버들과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며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됐다. 싹이 트던 오해와 편견도 바로 뿌리 뽑아 솎아낼 수 있었다. 반절의 도움을 요청했던 리드의 일도 모두 가져왔는데, 수평적인 관계지만 마냥 편치만은 않았던 그와 소통량이 늘면서 조금은 편해졌다.
다른 멤버들이 이니셔티브를 갖고 진행하는 캠페인의 아이데이션을 위한 커뮤니케이션도 꽤 많았던 주였는데. 대화와 함께하는 아이데이션은 언제나 즐겁다. 웰컴웰컴.
외부 미팅을 세팅하고, 여러 사람이 안팎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일회성 프로젝트도 여럿 있었다. 서로의 일정과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조금은 벅차긴 했지만 다행히 잘 조율됐다. 이런 일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버겁긴 하지만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면 뒤늦게 보람이 찾아온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빈틈없이.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때론 그것이 더 편하고, 좋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 댕댕이, 인류애로 산다는 엔프제는(MBTI 그만...) 여전히 사람, 그리고 대화에서 더 많은 영감과 기운을 얻는다.
좋은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에서 크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한다. 그들은 끌려다니기만 하는 소모적인 관계를 정리할 용기를 주고, 나 또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한다.
언제나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오지는 않는다. 이번 주가 유독 사람과 대화가 밀려왔던 특별한 때라 기록으로 남겨본다. 이렇게 밀려왔으니 한동안은 썰물이 지나간 바닷가처럼 고요할 것이다. 고요한 것도 좋다. 고요하면 고요한 대로 그 가운데서도 무언가가 꿈틀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