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북클럽의 첫 번째 책 선정 제안서 [작성자 E]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서 느끼는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등장인물이나 작가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면서 친구를 얻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이번에 내가 함께 읽고자 제안하는 책이 그런 경우이다.
« 랩걸 »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접한 책이다. 남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교적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갔었다. 제네바로 안고 올 책들을 사냥하러 대형 서점에 들렀고, 당시 8살 조카와 함께 가는 바람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조카는 보드게임과 자신이 읽을 책 사냥이 끝나자 지루해했고,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결국, 조카에게 20분만 자유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만화책을 펼쳐 든 그를 두고 급히 사냥에 나섰다. 다이어리마저 챙겨 오지 않았고, 평소 정리해 뒀던 도서 목록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저 어수선하게 시간에 쫓기며 그 넓은 광화문 교보문고를 훑던 중에 « 알쓸신잡 유시민 추천도서 »라는 안내문과 함께 집어 가기 쉽도록 전시되어 있던 이 책을 일단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제네바까지 함께 날아온 이 책을 펼친 건 그 뒤로 한참 지나서다.
호프 자런이라는 1969년생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60년대 생, 미국 출생, 식물 및 지리학자, 나와 성장배경이나 커리어 측면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재미있을까? 했던 나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우선 아주 매력적인 글 솜씨로 나를 감탄하게 했다. 글을 너무 잘 쓴다. 어쩜 이렇게 문학적인 감성과, 유머와, 자신의 전문지식들을 잘 빚어 수려하면서도 솔직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각 챕터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식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인간사로 겹치게 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을 솔직하게 써내려 간다. 그래서 400 페이지에 다다르는 이 책을 초반에는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다 어는 순간, 호프 자런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독서의 순간이 그 누구보다도 기대되는 친구와의 만남, 수다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이 책을 천천히 읽었다.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도 책을 덮었다. 그리고 일부러 일주일 뒤, 아니면 한 달 뒤에 다시 책을 펼쳤다. 남은 페이지 수가 줄어들수록 이 친구와 이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천천히 더 가끔씩 만났던 친구,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소원해졌다고 느끼기는커녕 반갑고 더 잘 아는 친구가 되어 재회하는 기분이 들던 그 친구와 그렇게 아주 진한 우정을 쌓았다. 그렇게 이 책을 1년이 넘게 걸려서 끝냈다.
얼마 전, 나랑은 또 다른 색을 가진 친구를 만났다. 그 다른 색감이 거부감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와 나의 마음을 연, 적극적인 이 친구가 독서클럽을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에게 내가 사랑하는 친구 호프 자런을 소개하고자 한다.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자런 저 / 김희정 역
Alma 알마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