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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ree Baik 애리백 May 24. 2020

<폭풍의 언덕> 혼돈의 서사와 선명한 목소리에

비극에 일조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뜯어본다 [2부]

퉁명스럽고 혼란으로 가득 찬 밤을 보낸 ‘워더링 하이츠’의 방문객 록우드는 다음날 시끄러운 마음을 안고, 아침 식사도 사양한 채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온다.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나는 록우드가 주인공인가, 싶다가도 엉클어진 가족사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지 일단 맥을 놓고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기로 했다. 매번 긴장 속에서 성급히 의심하고 추측을 하다가 오히려 기력을 잃어 이 책을 덮어버렸지 않은가. 복잡한 가정사 이면을 풀기에는 너무 거칠고 불친절한 도입부 때문에 힘에 부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클럽에서 약속한 책 읽기 분량을 소화하고 다음 모임을 나가야 했기에 책장을 얼른 넘겨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첫 장의 강렬함이 계속해서 휘몰아칠지, 또 얼만큼 혼돈의 서사가 등장할지 긴장이 되기까지 했다. 제1장에서 이미 한 차례 패대기 쳐져 저택 ‘워더링 하이츠’를 급히 빠져나온 록우드에게 나는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맥이 빠진 채 그 전날 밤의 소동을 겪으며 혼이 나가버린 불청객 록우드는 겨우 숙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고는 심장까지 감각을 잃은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은 뒤 체온을 회복하기 위하여 삼사십 분 동안 이리저리 거닐고 나서, 따뜻한 난롯불과, 원기를 되찾도록 하녀가 끓여준 뜨거운 커피를 즐길 기력도 없이 고양이 새끼처럼 맥없이 서재로 옮겨 갔다.”

여기서, 힘 없이 노곤해져 있는 록우드 앞에 주요한 화자가 등장한다. 심약한 록우드나 이 책을 읽으며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나 같은 인물이 감히 폭풍의 눈을 파헤칠 여력이 없어 허둥대고 있을 때 저녁 식사를 두 손에 들고 그 방 안에 등장한 인물은 가정부 ‘딘 부인’이었다. 별칭 ‘넬리’라고도 불리는 이 인물 덕분에 나는 그동안의 유구한 애증의 역사가 꾹꾹 눌려 담겨 있는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숨겨진 서사에 대해, 넬리가 키 뭉치를 들고 친절히 문을 하나씩 열어주어 복도의 저편 끝에 놓인 비밀의 방에 입장하게 된다. 한 장면씩 한 장면씩 마치 커튼이 걷히듯 말이다.

넬리는 아주 오랫동안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유모이자 가정부였고 사람들의 습성과 감추어진 내면을 샅샅이 목도한 목격자였다. 놀라운 스토리 텔러이며 참견쟁이이자, 밀당의 고수인 이 인물은 고양이 새끼마냥 침대에 누워있던 록우드가 이야기를 청하자 세상의 변천을, 불행한 일의 시초를, 저택 안에 있던 빌어먹을 인간들의 내력을 종알종알 떠들어댄다.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어디서든 앉아 읽기 시작


악에 받쳐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던 ‘워더링 하이츠’의 그들은 서로 고종 사촌 간이고 이종 사촌간이기도 하며, 그곳에 있던 비우호적인 젊은 미망인이 처녀 때 불렸던 이름은 ‘캐서린 린튼’, 그리하여 록우드는 전날 밤 빈 다락방에서 본 이름이자 자신의 악몽에 등장했던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가 싶다가, 좀 더 세세히 이야기를 청해 듣게 된다.

악몽의 주인공인, 죽은 여성 캐서린은 결국 해석이 불가한 혼란스런 악몽이 아닌 넬리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난다. 괴팍한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불멸의 연인이자, 평생에 걸쳐 공을 들이며 복수의 이유가 되어주었던 인물, 그 인연의 시작과 끝을, 이 폐쇄적인 공간에 찰흙처럼 뭉쳐있는 성정과 격식이 절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성장기와 밑바닥을 우물물을 길어 올리듯 퍼올린다. 화자 넬리의 등장으로 나는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매우 명민한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타자의 시선이 아닌 경청자의 자리에 나를 앉혀놔주었기 때문이다.

<폭풍의 언덕>은 고전 작품이기에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상평을 말했고,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나는 불행의 씨앗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을 정도로 노출이 많았다. 그 이름도 유명한 히스클리프, 그 문제의 인물이 이 저택에 나타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들 했다. 하지만 책장을 직접 넘겨가며 이 작품을 읽다 보니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한 명의 악인이 모든 걸 망쳤다고 하기에는 질문하고 싶은 많은 난해한 면들이 겹겹이 등장했달까. 나는 북클럽에서 그 이야기를 더 나눠보겠다 마음먹고 메모를 적어 놓았다. ‘불행이 한 명의 에너지로 불지펴질 수 있을까.’

중년의 모습을 한 히스클리프에 관하여 묻는다. “그렇게 사나운 사내가 되기까지는 필경 여러 가지 사연을 많이 겪었을 거요. 그 사람 내력에 대해서 아는 게 있소?”
“그야 남의 둥지를 가로채는 뻐꾸기의 내력 같은 거지요. 그이의 내력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어요. 다만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였고 맨 처음에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것은 모르지만서도요.”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남의 둥지를 가로채는 뻐꾸기의 내력’이라는 표현을 그저 비유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사건들을 비추어 ‘뻐꾸기’는 꽤 순화적 표현이었다.



<폭풍의 언덕>을 읽는 시간엔 커피가 여러잔 필요하다.


어린 소년이었던 히스클리프는 저택 주인어른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된다. 딸 캐시와 그의 오빠 힌들리의 아버지 언쇼 어른은 측은지심이 많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리버풀에 출장을 갔다가 길에서 구걸하고 있는 새까만 어린 소년을 발견하고는 그만 동정심 때문에 모른척하지 못하고 집에 데려온 것이다. 말을 더듬고 ‘악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처럼 얼굴색이 까맣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어린 사내아이를 집에 데려다 놓자 가족들은 기함했다. 누더기를 걸친 새카만 머리의 더러운 아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인종이 달랐던 듯하다.

“히스클리프는 무뚝뚝하고 참을성 있는 아이 같았어요. 아마 학대를 받아서 굳세어졌겠지요. 힌들리 도련님에게 얻어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참았고, 저한테 꼬집혀도 마치 자기가 잘못해서 다쳤으니 남을 탓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들이쉬고는 눈만 끔벅끔벅할 뿐이었어요.”

어쩌면 아버지는 장난꾸러기이자 말괄량이인 딸 캐시보다도 양자인 히스클리프를 아꼈다. 가족 모두 앞에서 히스클리프를 불쌍하다며 애닳아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그에게 빼앗겼다는 질투심 때문에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괴롭힌다. 장자인 힌들리는 히스클리프가 집안의 특권을 가로채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점점 더 원한을 갖게 된다.

넬리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그분이 귀여워하던 그 아이를 누가 업신여겨 덤빈다거나 골려주려고 할 때 특히 그러셨어요. 히스클리프에 대해서 누가 몹쓸 소리라도 하지 않나 하고 성화가 대단했어요.” “히스클리프는 은인에게 불손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귀염을 받아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자기가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은 뻔히 알고 있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집안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융화하지 못하는 히스클리프와 힌들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에서 이 둘의 서로 다른 성격이 대화 속에 드러난다. 아버지로부터 각자 동일하게 선물 받은 망아지를 바꾸겠다고 실랑이를 하는 장면이었다. 힌들리에게 폭력을 당한 히스클리프가 물러나지 않자 소리를 지른다. “내 망아지 가져, 이 집시 놈아! 그놈 타다가 떨어져서 모가지나 부러져라. 자, 그놈 갖고 지옥에나 떨어져. 이 거지 새끼야! 그리고 내 아버지가 가진 것 모조리 빼앗아버려. 단 훗날 네가 마귀 새끼라는 정체만은 보여드려.” 결국 히스클리프는 바라던 망아지를 갖게 된다.

원하는 것을 얻은 히스클리프가 싸움 중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통증을 가라앉히느라 잠시 짚단 위에 앉아있던 장면이 등장할 때 나는 괴롭힘 당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서늘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이 문장 때문이었다. “원하던 것을 가진 이상 그 밖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지요. 정말이지 그는 그 정도의 일로는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아서 저는 그가 진심으로 복수심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시겠지만 제가 감쪽같이 속았던 거랍니다.”
나는 이 구절에 느낌표를 세 개나 적어놓았다. 종국에는 힌들리의 저주가 현실이 되어버릴까. 작가는 계속해서 암시를 던진다.

이미 유년시절부터 갈등은 안고 있던 집안 ‘워더링 하이츠’에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건 10대가 된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연정이다. 캐서린은 내가 지금껏 그 어떤 소설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보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고 종잡을 수 없이 기복이 심한 감정적인 인물이다. 자신만의 언어와 욕망이 있으며, 말괄량이라는 흔한 표현으로는 전부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살아 날뛰는 입체적인 여성성을 1840년대를 살았던 20대 작가 에밀레 브론테는 이 캐서린이라는 인물에게 선사하며 특별한 여성 캐릭터로 만들었다. 여성이 꿈뜰거리는 감정을 끝없이 지독하게 외부에 쏟아내어 어떤 장면에서는 심란하기까지 하다.



<느슨한 북클럽>의 책 수다, 이따금씩 치열하게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하인 신분이 된 히스클리프는 친애하는 친구이며 깊이 연모하는 캐서린과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어디서부터 복수이고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그야말로 ‘폭풍의 언덕’만큼 차갑고 바람이 부는 황량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가는 시점에 북클럽 모임 날짜가 다가왔다.

“각자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씨앗이 결국 복수를 꿈꾸는 처절한 인물의 계획에 다면적으로 부역하는 게 아닐까요?” 하고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여전히 히스클리프를 가엾어하는 마음, 고통을 동정하는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곧이어 E가 매섭게 대답하기 전까지.
“저는 질투심 다음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복수심이에요. 제일 싫어하는 말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고요.”
그는 책을 나보다 훨씬 먼저 읽기 시작해서 이미 마무리 단계에 도달해있었다. 왜곡과 파괴의 역사가 책갈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미술관의 카페에서 만나 긴 책수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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