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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ree Baik 애리백 Jun 21. 2020

<폭풍의 언덕> 정말 지독히도 어두운 밤, 너의 마음

에밀리 브론테가 살았던 세계를 열어보고 싶다 [3화]

정돈된 매너를 보이는 인물을 찾을 수 없던 수많은 활자들 속에서 나는 문명화를 배제시킨 야만적 인문들이 꾸역꾸역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읽어나갔다.
“이 녀석의 모가지를 확 부러뜨려놓을 테다. 저것을 만든 조물주를 벌하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쯤 지옥에 보내는 일이라도 기꺼이 할 용의가 있어. 내 영혼의 온전한 파멸을 위해서 건배!” 아버지의 사랑을 히스클리프에게 빼앗겨 갈수록 거칠어지는 힌들리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본인의 어린 아들을 학대한다. 그렇게 불행은 2세들에게도 연결된다.
 
신을 모멸하고 스스로를 모독하는 인물들이 수많은 말을 쏟아내면서 서로를 저주했다.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 중 누군가를 완벽히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굴 연민하기에도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곤란한 기분은 어색하게 다가왔다. 감정을 의탁할 대상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 작품을 엉거주춤 읽어 나갔고, 북클럽의 모임이 있던 날 E는 이미 마음의 결론을 맺고 나타난 것처럼 단호해서 나를 당황시켰다.

연정의 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막무가내의 캐서린과 괴팍한 히스클리프는 사랑의 언어를 속삭일 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이미 친구이며 연인이었다. 불행히도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인간이 가장 불안한 상태가 되는 순간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모르는 때라고 생각한다.

히스클리프는 폭풍이 치던 날 이 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여름철로는 정말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었어요. 구름 모양새가 곧 천둥소리라도 낼 듯했어요. 그래서 저는 모두 앉아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했지요. 비가 오면 가만히 둬도 틀림없이 돌아올 테니까요.”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동안 깊은 연정의 대상인 캐시가 곧이어 이웃의 귀족 남성과 결혼을 하고 주거지를 옮기고 배우자 남성의 가문을 따라 이름 성을 바꾸어 세월을 지내는 동안 히스클리프는 소식도 없다. 어디로 갔을까.



와인 한 잔을 주문하고 글을 쓰기 시작


나는 신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편집해버린 워더링 하이츠의 인물들에게 서서히 질려가고 있었다. 종자가 다른 빌어먹는 아이를 천대하는 그들이 본인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겠다며, 자신만은 저들과 구별된 사람이라고 호소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장면에서 치가 떨렸다. 긍휼 하는 마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이 집안 식구인 조셉은 히스클리프가 사라진 날 밤에도 천둥같이 고함을 지르며 기도한다. 자기 같은 성자와 알코올 중독자인 저택 주인 힌들리 같은 죄인 사이를 확실히 구분해달라고 신께 간청하는 기도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엉터리로 불러대는 이들은 구석구석 적나라하고 표독스럽게 또한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교회 기도모임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위선적인 기도를 하던 내가 직접 바라본 실존 인물들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목사의 딸인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수많은 교회 안의 위선자들을 목격했을 테고 그것을 소설 속에 형상화했다. 기품 있는 듯 무게 잡던 저택의 외관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성경을 덮고 창문만 열면 저주와 함께 뱉어내 지르는 인간군상들의 감정의 입체성과 야만성이 정녕 에밀리 브론테가 살았던 세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해졌다. 보수적인 기독 사회에서 반역 행위로 보이지 않았을지. 당시 평단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데에 연결 지점이 있을 것 같다.

히스클리프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하게 그를 가여워하는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학대받던 집시 아이에게 반전의 기회를 자꾸만 주고 싶었다. 어느 순간 스며들어와 이 집안의 질서를 부숴놓았고 타인의 악마성을 깨우는 히스클리프가 설마 끝까지 저 모습으로 나를 배반하지 않겠지. 당신은 감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 나는 어느 페이지 귀퉁이에 연필로 작은 노트를 써놓았다. ‘<레미제라블>처럼 회개하는 수형자에 대한 일말의 기대’.



1985년 9월에 이 책을 소장했던 D. Thomson 씨를 거쳐 내게 도착한 책


미술관 카페에서 북클럽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장에 꽂혀있던 영문판 <Wuthering Heights>를 꺼냈다. 10년 전쯤 영국 도서관 세일에서 발견한 펭귄 출판사의 문고본이다. 오렌지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걸 보면 단 돈 1프랑에 이 중고책을 손에 넣었다는 증거다. 무려 1985년 9월에 이 책을 소장했던 D. Thomson 씨를 거쳐 내게 도착한 책이다. 1847년 생애 유일한 소설을 출판한 작가 에밀리 브론테여, 당신의 언어, 당신의 생각, 당신의 삶을 궁금해하는 한 명의 독자가 2020년의 어느 날 이 책을 펼치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여섯 명의 어린아이들을 남겨둔 채 어머니는 세상을 일찍 떠났고, 아이들은 교육자인 이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위로 두 명의 언니들은 일찍 죽고 에밀리는 다섯째, 언니 샬럿 브론테는 셋째. 다소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목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 아이들은 그들끼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상상 속의 왕국을 창조하고 목각 인형들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붙여가며 작은 세상을 만들어낸다. 스토리 속에서 복잡한 사회를 형성하고 심리를 추측하며 그 왕국에서만 쓰이는 언어를 새롭게 창조한다. <폭풍의 언덕>에서 보이는 이상하고 파워풀한 외로움은 흉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보내져 공부를 할 때도 에밀리 브론테는 극심한 향수에 시달린다. 그리고 언니 샬럿 브론테는 소설 <제인 에어>를 썼다.



첫 출판이 1847년, 그리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펭귄 출판사 판본은 1965년 출판이다.


북클럽 모임이 있던 주말이 지나고 다음날 나는 회사의 온라인 도서관에서 무제한 검색이 제공되는 논문 사이트에 들어갔다. 검색어 ‘에밀리 브론테’를 찾았다.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소설 작품이기에 <폭풍의 언덕>에 대한 문학 비평 논문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논문 한 편, 한 편을 들여다보고 첫 장의 요약본 도입구를 읽을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 작품을 평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은 당시 에밀리 브론테가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평단에서 혹평을 받은 것에 대해 강력히 변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숙하고 얌전한 연애 소설을 쓸 줄만 알았던 젊은 여성 소설가가 이렇게 야만적인 인간들을 그려내고, 심리 묘사가 종잡을 수 없으며, 책장마다 신을 오독하는 인물이 뱉어내는 위선적인 문장들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 가고, 복수에 미친 영혼과 얽힌 거칠고 외로운 연정을 펼쳐 보이는 것에 나이 든 영국 평단의 비평가들이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수많은 에밀리 브론테의 변호인들을 목도하며 나는 내 마음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고 확인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여성에게 원하는 진부한 기대와 역할 놀이에는 매우 큰 오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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