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청소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보편화된 중남미 문화
배경 사진 출처. Miguel Cabrera [Public domain], from Wikimedia Commons
배경 사진 설명. Union of a Spaniard (right), a Mestiza (middle), Castiza (child)
그림 속 왼쪽부터 Castiza (백인피 75%, 원주민피 25%), Mestiza (백인피 50%, 원주민피 50%), 백인 100% 로 구성된 가족의 모습.
무차차 "Muchacha" 는 스페인어로 소녀라는 뜻이지만, 멕시코에서는 이 단어를 집안 청소를 하는 가정부를 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중남미 지역에서 가정부를 쓰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데, 수입이 높지 않아도 가정부를 두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한 데는 우선 사회 계층 간 소득격차가 매우 높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중남미에는 아직까지 최저 급여 500불/월 이하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정부 등 사람을 쓰는데 부담이 별로 없다. 심지어 청소부와 요리사를 별도로 두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청소부를 요리 학원에 보내어 교육시키는 경우도 있다.
중남미 사람들이 역시 게으르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부분은 단순히 게으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남미는 역사적으로 매우 계급이 분명한 사회였다. 스페인 백인, 스페인 백인의 자식으로 중남미에서 태어난 끄리오요,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띠조, 메스티조와 스페인 백인의 혼혈 까스띠조, 원주민, 흑인 등등... 스페인 식민지 당시 그들의 혈통은 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였고, 스페인 백인 혈통의 최상위 계급을 기반으로 당시 흑인과 원주민 노예들이 농장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1820년대 중남미 여러 나라들의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노예제도도 폐지되었지만, 스페인 정통 백인의 자리를 백인 끄리오요 들이 차지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중남미의 독립은 인종적 독립은 아니었다. 즉, 여전히 백인에 가까울수록 부를 가졌고, 원주민이나 흑인 혈통들은 사회의 최하층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후 중남미 사회의 백인, 혼혈인, 원주민 사이의 경제적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부의 대물림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국의 학교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청소당번을 두어 교실과 화장실 등을 직접 청소하는 훈련(?)을 하는 것과 달리, 중남미 국가들의 학교에서는 청소는 청소부가 하는 것임을 어려서부터 확실히 해둔다. 학생들에게 청소 당번을 두지 않으며, 집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청소부가 있으니 청소를 할 이유가 없다. 청소를 직접 해야 하는 경우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가정부를 두지 못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어려서부터 청소를 직접 하는 교육을 받은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은 자라서 가정부가 될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서부터 청소를 직접 하는 것을 배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가정부가 될 준비를 한다는 해석은 과장되었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시각을 돌려, 가정부를 쓰는 사람의 관점은 어떠할까? 우선,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가끔 집도 비워야 하니 신뢰할 수 있는 가정부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중남미의 경우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청소는 물론, 아이 돌보기까지 소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필요하다. 중남미 지역의 주택 구조를 보면, 가정부 방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간이침대 하나가 들어가는 조그만 방과 화장실이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가정부를 쓰는 것은 불편함도 많았다. 청소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물론, 물건에 손을 대거나, 늦거나 빨리 퇴근하는 등 시간을 잘 안 지키는 경우도 많다. 여러 번의 교체를 통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했다 싶으면, 얼마 가지 않아서 그만두기도 한다. 결국, 사람을 쓰는 일도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배우게 된다.
한 번은, 우리가 고용했던 가정부가 청소 중 부엌 찬장을 열고 아이들 간식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는 것을 아내가 발견하여,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먹으라고" 얘기를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변명하는 것보다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믿는다. 중남미에서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답변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 더욱 그러하다.
중남미 지역 중산층 이상의 가정집을 방문해보면, 대부분 매우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을 발견하게 된다. 정원은 물론 장식품이라던가 평소 청소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깔끔하다. 대부분 가정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동차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한다. 세차 또한 직접 하지 않고 외부인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문화가 있기에, 집의 유지관리 부분에 대한 투자가 상당한 편이다. 어려서부터 집안 청소나 세차 정도는 스스로 하는 것을 배워온 한국인으로서, 이들의 가정부 문화가 지나친 낭비로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의 학교 문화에 적응되어 스스로 청소하는 법도 못 배울까 봐 걱정도 된다. 최소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청소도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교육을 시키고자 하지만, 중남미에서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이들의 가정부 문화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