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에는 귀여운 바다를 끼고 있는 평대라는 마을이 있다. 몇 해 전 평대 마을 뒷골목에 작은 간판이 아니었다면 집인지 가게인지 절대 알 수 없던 선셋봉고에 들른 적이 있었다. 제주의 구옥을 빈티지숍으로 변신시킨 매력적인 매장이었다.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할머니와 놀았던 공간이 생각나 추억에 잠기며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 있을 빈티지 소품을 구경하다 홀린 듯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나를 끌어당긴 건 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란 걸 알게 됐다.
리듬감 있고, 그루브 넘치는 게 완전 취향 저격이었다. 빠르게 휴대전화를 켜고 음악 찾기 앱을 연 다음 스피커 가까이에 가져갔다. 까데호의 답십리. 모르는 밴드의 모르는 음악이 검색됐다. 이날 이후 한동안 내 플리엔 까데호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까데호의 샤이 팬이 됐다. 나중이지만 <평대행진곡>이란 음악과 멤버 이태훈의 평대와의 인연도 알게 됐다.
올해도 제주의 여름 명절은 찾아왔다. 매년 여름 찾아왔던 스테핑스톤페스티벌은 벌써 19회가 됐다. 벌써 19년이라니 나의 청춘은 스테핑스톤과 함께였다. 올해 라인업에서 까데호를 발견했다. 집에서 음악 주도권이 아이에게 넘어간 후로 투바투의 그 어려운 제목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며 잠시 잊었던 그루브가 꿈틀댔다.
목적은 까데호였다. 아이들이 늑장을 부려도 까데호의 시간만 맞추면 됐다. 늦은 시간이라 공연장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했다. 넓은 잔디밭에 세팅한 관객석이지만 나름의 질서로 앉아 있는 다른 관객을 방해할 수 없어 아이들을 위한 간식과 돗자리를 들고 무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타카오 타지마의 공연이고, 다음 차례는 까데호다.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자 나는 무대와 가장 가까이에 가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무대로 갔다.
앞이 가려 보이지 않는 아이를 안았지만 몸이 흔들리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 내 그루브는 죽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내 피를 받았으면 여기서 멈출 수 없겠지. 친구와 함께 뛰던 청춘은 중년에도 세 아이와 함께 뛰었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기만의 청춘을 즐기는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