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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Jul 21. 2023

프릳츠라는 경험

프릳츠 제주성산점

그동안 본질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은 당연히 맛있는 커피를 서비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화려한 비주얼의 음료와 디저트를 내세우는 카페, 좋은 전망이 있는 카페,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트렌디한 카페보다 온전히 커피 맛에 집중하는 카페를 선호했다. 원하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카페는 과감히 무시하기도 했다.





성산읍 고성 마을에서 성산일출봉으로 들어가는 길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길이다. 광치기 해변 따라 이어진 길 끝에 보이는 성산일출봉은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웅장한 모습으로 바뀌는데, 언제 봐도 신비한 풍경에 항상 압도된다. 높이 180미터의 성산일출봉은 화산이 물속에서 폭발해 뿜어져 나온 화산 쇄설물이 가파르고 극적인 절벽을 만들며 쌓인 수성화산체(응회구)이고, 화산 활동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화산체이다. 유네스코는 2007년 이곳 성산일출봉과 함께 한라산, 거문오름과 용암동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멋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변을 지나면서 상가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주로 향토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사이에 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봤을 물개 그림에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맞춤법도 틀린 듯한 ‘프릳츠’라는 이름이 빨간 글씨로 간판에 크게 적혀 있다. 프릳츠는 이미 우리나라 커피신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빅브랜드이다. 공정 무역을 통해 좋은 원두를 공수하는 로스터리 카페로 알려져 있는데, 몇 년 전 제주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때 잠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워낙 정신없이 경험한 터라 정식 매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방문 기회를 보고 있었다. 평소 프랜차이즈 카페(또는 프랜차이즈화된 카페)를 잘 가진 않지만, 허영만 작가의 ‘커피 한잔 할까요?’를 보고, 그 책에 등장한 프릳츠에 호기심이 생겨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다른 대형카페를 대하는 정도의 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으로 프릳츠의 경험은 시작됐다.





안에 들어와 보니 넓고 쾌적한 느낌을 받았다. 좌석은 가운데 바를 기준으로 성산일출봉이 통창을 통해 보이는 구역과 도로가 보이는 구역 두 군데로 나뉘었는데, 가운데 바 옆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하러 갔다. 브루잉 커피 한 잔과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베이커리를 주문하는데, 원두를 선택할 수 있어 브루잉 커피는 에디오피아 짐마 아둡 메차 내추럴을, 아메리카노는 코스타리카 코라손 데 헤수스 티피카 내추럴을 선택했다. 원래 아메리카노는 블렌딩 원두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품절이었는지, 서울시네마 블렌딩이 이 원두로 대체 되어 있었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매장의 다른 공간으로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넓은 매장에 많은 사람, 특히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나에게 여행의 감성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평소에 관광객이 많이 있는 카페도 방문해 봤지만 유독 이곳에서 더 느껴지는 감정이다. 거기에 환상적인 뷰까지 더해지니 그동안 맛으로만 카페를 평가했던 내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매장 곳곳은 키치한 디자인으로 공간 구성을 했다. 이 디자인 요소들은 나의 기분을 충분히 들뜨게 만들고, 감정을 더 흔들고 있다. 마침 주문하는 손님의 목소리가 살짝 들렸다. 아이스 초코 한 잔 주세요. 아니 프릳츠에서 아이스 초코라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리가 번쩍하면서 열렸다. 아! 누군가는 이 공간을 커피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소비하는구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프릳츠가 의도한 것이었다. 브랜드의 주력인 커피가 아닌 다른 이유로 이곳을 소비하는 걸 인정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까?


커피 맛은 역시 좋다. 브루잉 커피는 산미와 단맛이 어우러진 향이 입안에 진하게 퍼지고, 내추럴 가공이라 그런지 브루잉 커피의 특징인 깔끔함보다 오히려 화려하고 묵직한 향이 계속 맴돈다. 그리고 큰 기대를 안 했던 베이커리도 전문점 못지않게 맛있다. 프릳츠는 본질을 전혀 놓치지 않고 있었다.





프릳츠 제주성산점이라는 공간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이미 커피신에서 위치가 대단하고, 원두만으로도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하겠지만 다양한 요소, 어찌 보면 오히려 브랜드를 가볍게 만들 수도 있는 요소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더욱 화려하고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 준다. 특히, 커피가 아닌, 그냥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까지도 고객군으로 확장하는 모습에 프릳츠가 위대하게 보인다. 상당한 고수이지만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느낌? 그게 프릳츠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유동 커피도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을 방문하고 남은 잔상은 진하게 남을 것 같다. 앞으로 일을 하면서 내가 갖춰야 할 마인드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여행자에게 꼭 공유하고 싶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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