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하하 - 3월 17일

by 설규을

0. 프로젝트 하하는 "하루에 글 하나씩"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시작한 나만의 프로젝트이다. 주로 하루가 마무리될 때 올리려고 한다. 이게 나의 메인 주제이고, "산만한 공대생의 넓고 얕은 취향들"은 매주 한 개씩 업로드 예정이다. 이건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리고 내가 그 하루를 체로 거르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1. 어제 나는 다음주 월요일까지인 과제를 미리하면서 퇴근시간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우리 연구실은 자율 출퇴근제인데 나는 일찍 일어나서 일찍 퇴근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저녁 6시에는 퇴근하려고 한다. 퇴근해서 기숙사로 바로 가야지, 기숙사 헬스장 자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빠르게 가야 한다. 그러다가 짐을 싸고 핸드폰을 켰는데,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사실을 봤다. 정말 말도 안 되게 기뻤고, 참 감사했다. 겨울방학 동안 글 쓰는 것에 관심이 생겨서 노력했다가 욕심이 생겼다. 생긴 욕심을 인정받고 싶어서 이리저리 기웃하다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맞닥뜨렸고,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 감사하다.

2. 기분좋은 어제를 뒤로 하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무척이나 상쾌했다. 햇살마저 나를 반기고, 바람마저 나를 정화시켜주는 듯 했다. 오늘은 나의 첫 연구실 세미나 발표날이었다. 첫 발표는 으레 자기소개 하고 간단히 끝나지만, 나는 무척이나 나를 소개하고, 남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많이 준비했다. 영어로 발표하다가 말을 더듬을까봐 스크립트도 영어로 미리 작성하여 준비했다. 사진도 많이 준비했고, 심지어 약간의 명언을 곁들인 나의 인생철학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오늘 점심에 처음 이야기를 나눠본 랩 선배에게 자기소개 사실 그거 아무도 관심 안 가진다고 했다. 만약 새로운 학생이 학사때 논문을 쓴 것 아닌 이상 관심이 잘 없다 라는 말을 들어서, 급히 수정했다. 필요없는 부분을 쳐내고, 쓸데없이 길게 만들지 않고, 그러다 보니 100이라는 부피가 40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랩 세미나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3. 사실 나를 소개하는 간단한 과제이기 때문에, 잘 끝냈고, 오늘 점심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선배가 수학을 아직도 좋아하면 자기랑 같이 경로짜는 거 해보자고 해서 마음이 설렜다. 이유는 내가 첫 출근하고 나서부터 연구주제를 수렴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점점 수렴되는 느낌이라서 마음이 다시 설렜다. 나는 본래 산만하고 관심도 많고 그래서 발산하는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큰 그림을 잘 보고, 직관적으로 보는 경향성을 가졌는데 논문은 깊게 파고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점점 수렴시킬 필요가 있는데, 퍼즐이 한 조각씩 맞춰가듯이, 등산할때 한걸음씩 올라가듯이 차분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아가는 나와 첫 세미나를 잘 끝낸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Reward를 주었다.

4. 오늘의 보상은 사진에 첨부한 화이트와인이다. 학교 근처에 예전에는 우동집이었던 공간에 지금 와인상회라는 와인가게가 생겼다. 그곳에 가서 내가 이러저리 알아본 가성비 갑 화이트와인들을 보여줬다. 대략 6개정도를 보여줬는데 전부 다 없었다. 그래서 화이트와인을 좋아하는데 추천 부탁드린다고 하니 소비뇽 블랑과 샤도네이를 보여줬다. 화이트 와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품종이다. 지역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포도의 품종이다. 나는 주로 샤도네이를 먹었었는데, 맛이 마일드하면서 상큼하고 여운이 좀 있다. 쉽게 말해 맛이 어렵지가 않고 쉽다. 달지 않으면서 상큼하게 향이 입에 머무는 느낌이다. 그런 반면에 소비뇽 블랑은 그렇지 않고 상큼 새콤 상큼 새콤하다는 표현을 듣고 흥미가 생겼다. 강화학습에 보면 현재상태에서 가장 좋은 것을 택하는 exploitation과 가장 좋은 것을 택하지 않고 더 좋은게 어디 없나하고 떠나는 exploration이 있다.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한데, 삶도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exploration을 떠나야 더 좋은 local 값을 발견하지 않을까?

그래서 발견했을까? 사실 아니었다. 소비뇽 블랑의 상큼 새콤 상큼 새콤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하나의 층을 가진 쉬운 맛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어려운 맛이었다. 그러나 좋은 경험, 탐헝이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한 일주일 넘게 이 와인과 함께 밤을 즐길 수 잇을 것 같다. 하나하나 탐험하면서 좋은 것을 찾아가려는 나는 내 인생을 강화 중인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