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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ul 26. 2022

초대 경찰청장 김구가 받은 편지

선생께

 

지난 주말 경찰서장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경찰이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토론회를 개최한 모양입니다. 행안부에서 진행 중인 경찰국 설립이 민주주의와 권력 통제에 바람직한지, 법률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논의였던 것 같습니다. 경찰이 과거처럼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게 국민을 탄압했던 때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고 끝에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현장 경찰들이 선두에 선 것을 시작으로 총경들이 바통을 받아 릴레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혹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였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기관으로서 매우 절제 있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심지어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듯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총과 권력을 쓰는 자들인가 의심스러울 만큼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엉덩이 무거운 경찰서장들, 총경만 달면 끝인 것처럼 앞만 보며 살아온 사람들, 그래서 세평과 주권자의 입김 앞에  나약한 그들, 세상에서 가장 이동 경로가 좁은 들로 평가할 수 있는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서장들은 그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럴지언정 이런 역사는 우선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경찰 30년 전으로 회귀하다.’

 

그들은 경찰국의 설립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숙고합니다. 장관이 설명을 하고 있지만 행안부 안의 경찰국이라는 것이 군사정부 내무부 안의 경찰본부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솥뚜껑만 보아도 가슴을 철렁하는 그런 자들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정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을 밟고 때렸습니까?  

 

이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강박이 있습니다. 폭력 경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강박 말입니다. 반세기 넘게 형성된 ‘탄압 DNA’, 그것은 틈만 나면 고개를 내밀려합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그리고 지금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폭력을 볼 때마다 경찰의 손은 부르르 떨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폭력은 권력이 직렬로 구조화된 나라의 공통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약한 질환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경찰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자꾸 그들을 품으려 합니다. 라인이 하나로 연결될 때, 경찰의 칼춤이 시작되는 것을 그렇게 보고도요. 경찰청 자체도 어둡고 음산한데 행안부라는 더 큰 동굴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주권자의 감시에서 더욱 벗어났을 때를 말입니다. 경찰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그래서 배수의 진, 쇼윈도 인생을 택한 것 아닐는지요.   

 

선생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했습니다. 자유란 법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제멋대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가 있는 나라여야 의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유로운 의사’ 참으로 위대한 표현입니다만 경찰에게는 무척 제한적입니다. 중대한 논의에서 그들은 자꾸 패싱 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면서 정작 그들은 최소한의 표현마저 허락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선생, 경찰은 과연 민주 경찰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무더위 잘 나시라고 냉장고 바지 한 벌 보내드립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흐르는 공기가-

 


영감을 준 자료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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