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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Feb 16. 2023

방랑자의 심장을 가진 그에게

 『꼬리 밟고 쏙쏙 경찰법 이야기』서평 포함

『꼬리 밟고 쏙쏙 경찰법 이야기』를 읽었다. 서평을 남기려고 했으나 문학청년 정현수 님이 더할 나위 없는 유려한 문장을 남기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며 델리트 키를 길게 눌렀다. 떨어진 이삭처럼 거친 나의 글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기억하는' 이제는 작가가 된 이동환의 행적을 더듬어봄으로써 그를 추억하려 한다.


방랑자의 심장을 가진 그에게     


40년 가까운 세월을 경찰로 살아온 작가는 경찰을 좋아하지 않았다. 전두환 군부에서 포스트 모던한 청년경찰을 보낸 그는 87년 민주화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정치경찰'이란 오욕을 청산하고자 동지들과 ‘경찰 중립화 선언’에 힘을 보탠다. 마침내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경찰은 '일제-군부'의 잔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게 새천년의 문턱까지 들일 수 있었다. '선언'만으로 '중립'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경찰의 체질 개선을 위해 뜻있는 현장 경찰들과 의기투합한다. 불량서클인 ‘폴네띠앙’은 그렇게 꾸려진다.     


왜 그는 좋아하지도 않은 경찰을 40년 동안이나 했을까. 그것도 ‘감시의 손’이 흔드는 위기의 밧줄을 타면서 말이다. 그가 보기에 경찰은 딱했다.-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돼지우리 속 백조라고 해야 할까. 언론에 휘둘리고 권력에 휘둘리고 승진과 인사에 휘둘리고 내부의 몰지각함에 휘둘리고 그렇게 정의와 시민 앞에 당당하지 못한 경찰이 딱했다. 명예와 정의로 숭고하게 포장된 겉모습과 달리 경찰의 정신과 육체는 병들어 있었음이 딱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 무엇보다 13만 조직의 촉망받는 청년경찰이었을 작가는 이러한 현실 앞에 무기력한 자신이 가장 딱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40년 동안 지휘부에게 찍힌, 그럼에도 출신 덕을 조금은 보았을 그는 미근동 먼 곳에서도 현장을 보고, 그곳을 듣고, 그곳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오직 경찰이 '딱'했기 때문이다. 그가 경찰을 온전히 ‘애정’했다면 “경찰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조직의 신망이 두터운 인사”라는 메마른 타이틀 하나씩 다는 맛에 어깨 뽕 잔뜩 넣고 다녔을 것이다. 물론 그도 욕망의 인간일 터, -나의 글은 그를 온전히 설명해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의 ‘딱함’은 조현오 경찰청장 때에 이르러 동네방네 시끌벅적한 ‘사물놀이式’ 경찰 개혁을 ‘시전施展’함으로써 정점을 찍는다.     


‘현장 경찰 100인과 토론회?’라는 파격으로 업무를 개시한 조현오 청장 그리고 그의 특수부대 ‘이동환과 기본과 원칙 구현 추진단’의 도발을 보며, 나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들의 전투능력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경찰이 격랑을 헤치고 어떻게 온전한 모습을 되찾게 될지 위태로운 목격자가 되고 싶었다. 주변의 반대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그는 ‘보릿자루’ 하나 들이기로 작정한다. 나는 비록 마지막까지 생김새도 생각도 모호한 켄타우로스였지만 기원단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서서히 성과를 마무리하는 시점을 맞고 있었다.      


기원단과 현장 경찰들은 개혁 판 위에서 한껏 취해 어울리다가도 종종 주먹다짐도 벌였다. 특진 참관단, 중간·현장책임자 호칭, 수당 현실화, 무엇보다 ‘경찰장 견장’은 슈퍼 울트라 급 쓰나미를 일으킨다. 지구대장까지 아니 총경까지 마침내는 경찰청장까지 ‘참수리’를 달아야 한다며, ‘부착 논쟁’은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가고서야 ‘경위 이하’ 시범 운용으로 일단락한다. ‘계급장 떼기’ 폭풍은 잔잔해져 갔고 서서히 안착하는 듯했지만 청장이 바뀌자 이내 해체 수순을 밟는다. 경찰 개혁 운동사에서 가장 파격적이라 할만한 ‘계급혁명’은 그것 앞이라면 어느 층위 누구라도 광기에 젖을 수 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준 채 잠자고 있다.    

  

기원단은 해체되었고, 조현오 청장도 옷을 벗었다. 경찰청도 현장도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진 뒤의 고요한 들녘이 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실험 정신은 계속된다. 경남 양산에서 벌인 ‘승진 오디션’, 그것은 ‘밀실과 담합’이라는 의심이 여전했던 당시에 승진 심사가 어디까지 투명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대응 미흡으로 언론에 두들겨 맞을 때면 ‘무엇이 잘못이네, 어떻게 대응해야 하네’ 하면서 어김없이 꼰대 질을 자청했다. 작가의 도발에 발끈한 이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비 공감 폭탄을 때리기도 하였지만 그의 ‘행정법 강의’는 더욱더 현장을 파고들고 있었다.      


경찰이 딱하다던 작가는 번듯하게 닦인 길보다는 샛길을 주로 걷는다. 경직법의 바른 사용이라는 ‘보편’에서 조직의 치부를 건드리는 심기 ‘불편’까지 걸음걸이는 빨랐고 넓었다. 정한 곳 없이 떠도는 이를 방랑자라고 한다. 적당히 욕망하다가도 비위가 상하면 돌아서버린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으니 눈치 볼 것도 없다. 도발도 악다구니도 거리낌 없다. 그의 심장이 그랬다. 그는 책에서 ‘경찰의 주인공은 현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현장을 위해 40여 년 떠돌아다닌 셈이다. 그래서인지 청록 셔츠를 벗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이번엔 더 깊고 원초적인 현장이다. ‘중앙경찰학교’ 그의 방랑 끼는 ‘리셋’되었다.      


-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서평■

『꼬리 밟고 쏙쏙 경찰법 이야기』는 형사법과 경찰행정법을 헌법과 인문학이 품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재밌고 술술 읽힙니다. ‘리걸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게 한 작가의 고민의 열매겠지요. 뿐만 아니라 최신 경찰의 쟁점들을 사례로 풀어내고 있어서 유난히 현장 냄새가 진동합니다. 수십 년 간 저 ‘딱’한 경찰 때문에 싸우고 부대끼면서 검은 잉크 꾹꾹 눌러 적은 이야기라서 그런가 봅니다. 이 책의 활용법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현직 경찰입니다. 형사법과 행정법을 경찰 쟁점을 들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정리가 됩니다. 특히 저처럼 법서를 놓은 지 오래된 동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둘째, 경찰 수험생에게 권해보십시오. 우리의 열 마디 말보다 큰 동기 부여가 되어 줄 겁니다.   

셋째, 시민은 법 교양서라고 생각하시고 읽다가 막히는 것은 과감히 패스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더라도 법의 정신이 마음에 줄곧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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