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혈압과 목디스크 증상이 호전됐나 싶더니 다른 게 찾아왔다.
눈이 간지럽고 충혈되고, 코가 막히고 콧물도 나고, 목이 가렵고 기침이 났다. 종합병원인가?
하루 종일 골골대다가 잠까지 잘 못 자니 죽을 맛이었다.
난 비염 같은 건 없는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잠깐 시골에 살 때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
아무래도 봄철 알레르기인 듯했다.
나는 시골에 잘 안 맞는 타입인가? 또 생각이 많아진다.
아프지 말자. 의식적으로 생활해야지.
2.
점점 분명해지고는 있다.
난 시골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기 싫었던 게 더 컸다.
시골에 지내면서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은 사라졌다.
다만 사람 많은 곳과 교통체증은 여전히 싫다.
근거리에 마트, 도서관, 운동할 곳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어쩌면 읍내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집을 구해볼까도 싶다.
읍내는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모를 일이다.
3.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무리 봐도 농사는 아닌 것 같다.
돈은 둘째치고 하고 싶은 마음도 잘 안 생긴다.
그렇다고 할 만한 다른 일을 찾지도 못했다.
육아에 지쳐 일을 할 엄두가 안 나도 했고,
대체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냐는 막막함도 한몫했다.
겨울에는 지인의 요청으로 우유배달을 몇 번 같이 했는데,
오히려 돈 벌기의 어려움과 현 직장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4.
그러다 발견한 게 공무원이다.
당장 할 만한 일을 찾은 것도 아니고,
창업을 하자니 아직은 엄두가 안 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본업이 사무직인 내가
초창기 시골로의 정착을 위한 직업으로는 딱이다 싶었다.
임기제이긴 하지만 월급도 적지 않고 심지어 내가 하던 일과 유사한 직무도 찾았다.
얼마 전 채용공고를 발견하고 살짝 상기되어 지원서를 작성하다가 멈칫하게 되었다.
계속 직장 다닐 거면 귀촌이 큰 의미가 있나?
언제 퇴사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직장이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직장과 비교하면 월급도 20% 정도 줄어들고,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는 데다, 워라밸도 보장할 수 없는데.
물론 붙고 나서 문제지만, 사실상 하향지원이다.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5.
집값이 싸서,
인구밀도가 낮아서,
시골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좋아서,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에 살 수 있어서
시골이 좋다.
회사원이라는 트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쉬운 곳도 시골인 것 같다.
다만 조금만 더 고민해 봐야겠다.
이제 고민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거의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