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행 평가
중2 1학기 기말고사. 곧 아이의 생애 최초 시험이 시작된다.
매 학기 시험을 보던 우리 때와 달리 요즘 초등학생들은 공부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놀이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학교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 학년제라 하여 역시 시험이 없다.
인생의 힘든 시험들이 중학교 2학년 시험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이쯤 되면 중간에 완충지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나 엄마나 팽팽하게 긴장한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영어에 두각을 보였고 독서를 즐겼다.
그런 아이가 늘 자랑거리였지만 책만 읽을 수는 없었기에 중학생이 되었을 때 입시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학원의 레벨테스트를 받고 최상위반에 배정되었지만 코로나로 여러 차례 수업이 폐강되었다.
중1 겨울 방학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다시 테스트를 보고 최상위반에 배정되었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계획대로 되는구나 안도한 것도 잠시. 아이는 평소와 다른 숨 막히는 경쟁 분위기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밥도 거의 못 먹고 긴장하고 혼자 우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기에 이왕 시작한 거 악착같이 이 상황을 돌파하길 바랐으니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학원은 두 달 만에 그만두었고 다시 예전처럼 책 읽고 에세이 쓰는 학원에 잠시 다니다 그만두고 인강으로 문법 공부를 하자고 했다가 그것마저 흐지부지 되었다.
아이는 수학에 올인하고 있었고 영어는 개인과외를 받겠다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2 기말고사가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원서 많이 읽고 문장도 좋고 소위 영어 좀 한다는 아이들도 시험 점수에 깜짝 놀란다고 했다.
나는 초조해졌다.
발이 넓은 엄마들이나 예전 영어학원 선생님을 통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마땅한 선생님을 찾지 못하다 우연히 지역 카페에서 어떤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이 사람은 카톡으로 자신의 화려한 이력과 그간 아이들과 소통한 문자를 캡처한 사진을 잔뜩 보냈다.
서울 **자사고 졸업. 일리노이 공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그리고 강남, 수지 등 대형학원에서의 강사 경력까지.
영어 전 영역을 커버하면서 딸과 잘 통할 수 있는 젊은 여자 선생님
다 좋아 보였다.
이거야......
수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샘플 수업을 했다.
시간당 4만 원으로 비용은 선불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아이의 영어선생이 되었다.
그렇게 한시름 놓았다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첫째 날 30분 늦게 와서 1시간 수업을 했고
둘째 날 오전 갑자기 생리가 터져서 수업을 못하겠다고 했고
셋째 날 독감에 걸려서 줌 수업을 하자고 했고
넷째 날 지방에 갈 일이 있어서 줌 수업을 하자고 했다.
수시로 약속시간을 깨고 불쑥불쑥 보강 시간을 잡고 자신의 컨디션과 스케줄대로 일정을 조절했다.
뭐지?
평생 상식적으로 살았고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고 우울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사람 프로필이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기를 당한 건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과외 사기당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는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변명과 핑계가 많았다.
나중에는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나에게는 예의 바른 척하면서 딸에게는 약간 협박과 욕설 비슷한 문자들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딸에게 그 사람 카톡을 차단하도록 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그간 수업한 것을 뺀 나머지는 환불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환불을 미루던 그 사람은 내가 학력이 의심된다고 살짝 자극하자 발끈하면서 환불금의 일부를 보냈다.
그 후 그 사람은 내 번호를 차단하고 지금은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어쩌다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영어실력이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사람 부모님은 아이가 자사고에 다녀서, 미국 유명한 대학에 입학해서 좋으셨겠다.
성실과 신뢰를 갖추지 못하고 학벌만 좋았던 그 사람은 결국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다.
내세울 거라고는 학벌밖에 없는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나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초조함은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신중하지 못하고 욕심이 앞서 아이 시간을 빼앗았다.
요즘 아이는 학교 수업과 수행 준비, 학원과 학원 숙제까지 병행하면서 기말고사 준비까지 하느라 새벽 2시에 자는 게 다반사이다.
"미안해, 근데 엄마는 그게 최선이었어."
착한 딸은 늘 엄마를 이해한다.
다행히 그 후 괜찮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 사람에게 못 받은 돈은 결국 이 선생님 만나려고 지불한 돈이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부모는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뉴스를 보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부 잘하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가끔 딜레마에 빠진다.
공부 잘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겠다.
사람 간의 약속은 정말 중요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고 어린 사람이라고 막대하지 않고 나의 돈과 시간만큼 남의 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지
과외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