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주에 다시 본 두 편의 걸작.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개인적인 일로 7월은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한 달이어서, 브런치에는 거의 아무 신경도 쓰지 못했네요. 근 한 달 만에 올리는 이번 글에서는 6월의 마지막 주에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회의 변두리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건조한 화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그리고 다양한 레퍼런스를 끌어와 화려한 시각적 기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는, 어떤 기준으로 본다면 선상의 양 극단에 위치한 감독들일 겁니다. (라스 폰 트리에가 한때 도그마 선언의 중심축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쩌면 조금이나마 이 두 감독이 겹쳐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 글의 제목에서 언급된 두 편의 영화,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과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장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이지만, 만약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2011년에 제작되어 2012년에 국내에 개봉했고, 제게 있어 그 해 최고의 영화들이었으며, 올해 공교롭게도 같은 주에 극장에서 다시 본 영화라는 점입니다. 특히나 이 두 작품이 저에게 뜻깊은 이유는, 이 두 편이 제가 영화라는 예술에 깊게 빠져들게 한 계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2011년에도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통념을 깨부수는 (홍상수의 ‘북촌방향’ 내지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 같은) 영화들을 만난 적 있었지만, 2012년 1월에 개봉한 ‘자전거 탄 소년’과 2012년 5월에 개봉한 ‘멜랑콜리아’는, 서로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충격을 안겨 준 작품들이었습니다.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저변에 대한 일종의 깨달음을 주었다고나 할까요. 7년도 넘게 지나, ‘멜랑콜리아’는 웰컴 투 라스 폰 트리에 킹덤 기획전이 진행된 아트나인에서, ‘자전거 탄 소년’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특별 상영해 준 KU시네마테크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자전거 탄 소년’은 사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로 치면 굉장히 친절한 편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가장 최근작 ‘언노운 걸’을 포함해서)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2005년의 ‘더 차일드’, 2008년의 ‘로나의 침묵’ 그리고 2011년의 ‘자전거 탄 소년’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자전거 탄 소년’은 그들의 영화세계 속 하나의 정점을 보여주는 훌륭한 걸작입니다. 흔히 ‘윤리적인 카메라’라는 표현으로 수식되는 것처럼, 인물을 그저 따라가거나 물끄러미 지켜볼 뿐인 그들의 카메라에는 지근거리에서 인물을 보듬어주려 하는 사려깊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만들기 태도가 그대로 배어납니다. ‘자전거 탄 소년’을 보며,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이렇게나 강렬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화는 감정에 일절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감정을 깊이 끌어내고야 맙니다.
‘멜랑콜리아’는 내내 우울에 압도당하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라 할 수 있겠죠. (극의 제목부터 ‘멜랑콜리아’이지 않습니까?) 마치 이야기 전체를 압축한 뒤 요약해서 전달하듯 배짱 가득한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된) 오프닝 시퀀스 이후로, 2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 이야기에서 각 부의 제목은 우울의 나락에 빠져든 두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바닥에 가깝게 곤두박질치는 감정을 제한적인 공간적 배경 속에서 다루는 설정이 영화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는데, 이때 이를 담아내는 방식이 핸드헬드 촬영으로 짧막하게 구성된 쇼트라는 점은 형식적으로도 더없이 적절해 보입니다. ’멜랑콜리아’는 영화 속에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의 이름이죠. 예지된 파국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의 무력감을 떠올린다면, 결국 ‘멜랑콜리아’는 마음 속의 재난에 대한 영화입니다. 아직도 잊지 못할 이 영화의 엔딩을 극장에서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온 몸에 전기가 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숱한 문제작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화적 절정을 응축하고 폭발시키는 그의 주특기가 가장 황홀하게 발휘된 걸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다소 지쳐가던 시점에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겠네요. 이렇게 상반기를 뒤로 하고, 정신없이 바빴던 7월을 지나, 이제 8월부터 또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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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36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by 라스 폰 트리에 (덴마크)
S038 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Le Gamin au Vélo, 2011) by 다르덴 형제 (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