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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n 30. 2020

길 위에서, 시간의 흐름 속으로

Im Lauf der Zeit / Kings of the Road

로드무비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빔 벤더스가 1976년에 만든 ‘시간의 흐름 속으로’는 길 위에서 떠도는 삶의 편린을 느린 호흡으로 담아냅니다. (이 영화는 빔 벤더스가 1970년대에 만든 로드무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도 붕 떠 있는 상황에 지쳐갈 무렵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길 위를 끝없이 떠도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상황에 기묘하게도 위안이 되어 다가왔기 때문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숱한 로드무비를 만들어 온 빔 벤더스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이 작품을 그의 최고작으로 꼽기에는 오랜 고민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 걸작에 대해서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서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화두 중 일부를 간략하게 풀어볼까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는 인물들의 사연이 중요치 않습니다. 3시간에 가까운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사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두 명의 주인공이 대형 트럭을 타고 독일 전역을 정처없이 표박할 뿐인 이 이야기 속에서, 각자가 떠나온 공간을 짧막하게 방문하는 순간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과거의 사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길 위에서 떠도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이 영화는 (떠돌게 된 이유인) 전사前事가 아니라 (떠돌고 있는 상태인) 현상現狀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별다른 클라이막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핵심은 단지 길 위에서 유랑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 속으로’는 이야기로서의 기승전결의 측면에 있어서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관계적 역학을 제외하면) 텅 비어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텅 비어있다는 것은 사실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뜻이겠죠.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파장을 생각해보면, 역설적이게도, ‘시간의 흐름 속으로’는 텅 비어있기 때문에 가득 채워진 영화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는 목적성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길 위에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그저 어딘가로 나아갈 뿐인 주인공들의 행로야말로, 그 앞을 섣불리 짐작할 수 없는 삶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이 영화는 빔 벤더스 영화세계의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 불확실로 가득한 삶이란,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단어로 내뱉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를 만난 로베르트는, 자신의 텅 빈 가방과 아이의 꽉 찬 노트를 바꿈으로써 아이에게 모두 없앤 채로 세상을 바라볼 새로운 시각을 선물합니다. 한때 융성했던 극장을 떠올리며 이제 몰락하는 극장에 대한 탄식을 내뱉는 이들을 만난 브루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아서 틱틱대는 영사기를 묵묵히 고치며 희미한 미소를 짓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는 방향성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첫 등장하던 순간, 브루노와 로베르트는 이미 방향을 잃은 채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인물들의 시발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소도시를 돌아다니는 영사기사 브루노는 커다란 트럭을 집 삼아 살아가고 있었고, 자동차에 탄 로베르트는 눈을 감은 채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접점이 없어 보였던 그들의 삶은 브루노의 눈 앞에서 로베르트의 차가 강물에 돌진함으로써 처음으로 교차하게 되며,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맞닥뜨립니다. (도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두 사람 각자의 인생이 그리는 포물선이 두 번 교차하는 시점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로드무비일 겁니다.) 떠남에 있어서 거침이 없는 이들은 마치 그것이 운명인 양, 결국 영화가 끝나도 길 위에서 떠돌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정처없는 길 위의 고단한 생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라면, 방향을 잃어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돌아가던 필름이 멈추는 순간 연장을 들고 영사기를 반복적으로 고치는 브루노처럼, 혹은 전화기를 들어 같은 다이얼을 돌리자마자 매번 다시 내려놓고 마는 로베르트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나름의 굴레 속에서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목적성의 부재와 방향성의 상실.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으로’의 구조적 특성은 빔 벤더스가 만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로드무비 3부작을 함께 구성하는 ‘도시의 앨리스’가 앨리스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기 위한 (미국에서 독일에 이르는) 서쪽으로의 여정을, ‘잘못된 행동’이 작가적 영감을 찾기 위한 (독일 내에서의) 남쪽으로의 여정을 담아내며 방향성과 목적성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는 주인공들의 여정 자체가 일정한 방향을 지니고 있지 않을 뿐더러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그 목적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저 길 위를 떠돌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영화 전체에 걸쳐 구조적으로 역설되기까지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의 인물들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과거에 의해 속박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자유롭습니다. 이때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실존적 정체성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독일어 원제 Im Lauf der Zeit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빔 벤더스는 일관적으로 이 영화에서 목적성 혹은 방향성을 배제한 채 이미 길 위에 던져진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강조했듯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는 지나온 곳도, 지나갈 곳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인물들을 뒤로 한 채 자동차를 타고 내달리거나 기차를 타고 떠나는 로베르트에게도,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영화들을 떠올리며 묵묵히 트럭을 타고 영사기를 수리하는 브루노에게도, 지나온 궤적과 지나갈 행로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외치는 것 같은 이 영화 앞에서, 저는 움켜쥐고 가닿을 수 없을 때는 내려놓고 흘러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연연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길 위를 헤쳐나가는 정답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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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으로 / Kings of the Road (Im Lauf der Zeit, 1976)

dir. 빔 벤더스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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