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브락 / Guillaume Brac
2021년 겨울,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렸던 ‘자크 로지에 & 기욤 브락 특별전’에서 기욤 브락의 작품들을 감상했습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서 한겨울에 방문했던 부산에서, ‘바캉스’ 혹은 낯선 타지에서의 경험을 이야기의 주된 소재로 삼는 기욤 브락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여전히 각별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겨울,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 낯선 환경에 그나마 적응해갈 무렵,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Mubi에서 기욤 브락의 전작을 상영해준 덕에 정확히 1년 만에 그의 영화들을 마치 특별전마냥 집에서 매일같이 한 편씩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2년 만에 기욤 브락의 영화가 없는 겨울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렇다면 그의 영화에 대한 글이라도 남겨보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에 이렇게 일기를 써내려가듯 두서없는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2021년 ‘다함께 여름!’ 개봉 당시에 보신 분들 이외에는 기욤 브락의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보물같고도 사랑스러운 이 감독의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영화의 전당 프로그램에서 굳이 공동상영을 기획한 데서 짐작가듯, 기욤 브락은 자주 자크 로지에와 비교되곤 합니다. ‘여름 바캉스의 해프닝’을 주된 소재로 다루었던 ‘7월 이야기’ 혹은 ‘다함께 여름!’이 자크 로지에의 숱한 작품들과 소재 상으로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겠죠. 자크 로지에가 ‘오루에 쪽으로’ 혹은 ‘거북섬의 표류자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욤 브락의 영화들은 뜻밖의 기회를 통해 방문하게 된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의 해프닝을 해학적인 필치로, 허나 그와 동시에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욤 브락이 근래 만든 이 두 편의 영화, ‘7월 이야기’와 ‘다함께 여름!’은 (그가 그 사이에 촬영한 다큐멘터리 ‘보물섬’과 함께) 여름의 청량한 풍경을 담아내는 동시에 여름이라는 시공간 속에 놓인 인물들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그 소동의 끝에 남겨진 인물과 관객이 묘하게 쓸쓸하고 달뜬 감정의 기류를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정말이지 탁월하게 마음의 소용돌이를 그려냅니다. 짐짓 감정적인 처연 속에 빠질 만한 상황 속에서도, 그와 정반대로 그 감정적인 좌초 자체를 즐거운 일상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점이 기욤 브락의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영화들은 처연하되 청승맞지 않고, 칭얼거리되 투정부리지는 않습니다.
그가 ‘7월 이야기’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에서도 이러한 착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자 없는 세상'에서는 짧은 휴가를 맞아 낯선 마을을 방문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토네르’에서는 고향으로 간만에 돌아가게 된 뮤지션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치 않은 시공간에서의 해프닝을 진진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여자 없는 세상’과 캐릭터적으로 이어지는 단편 ‘조난’을 포함해서, 세 편의 영화에서 뱅상 매케인이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상을 특별한 영화로 만들어내는 재주야말로 기욤 브락의 둘도 없는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기욤 브락의 영화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겠죠. 극중 인물들에게 있어 그들이 낯선 시공간에서 경험한 특정한 시점의 기억들이야말로 그 순간들을 추억하는 훌륭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겨울, 구체적으로는 1월 말이라는 시간이 기욤 브락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될 것 같네요. 아마 매년 1월이 끝나가고 2월이 시작될 무렵, 저는 때때로 기욤 브락의 영화들을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