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잘못이 아니야
초등학교 2학년, 새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까지 우리 집은 반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특별하게 가난하다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없는 살림에도 맨 우선 첫째 아들을 챙겼던 부모님 덕분일 테죠. 어린 시절 추억 대부분은 반지하 집에서의 기억들입니다.
문턱에서 슈퍼맨 놀이를 하다가 눈썹이 찢어지고, 수두에 걸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들고 찾아와 준 친구와의 추억 그리고 벽지 곳곳에 새겨넣은 낙서 조각들까지,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켜켜이 박혀있는 기억 조각 대부분은 이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중에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촉감마저 생생합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다양해요. 알람 소리나 어머니 잔소리에 깨기도 하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마주하며 부스스 눈이 떠지기도 하죠. 잠에서 어떻게 깨었느냐에 따라 그날 수면의 질과 하루 컨디션이 결정될 정도로 삶에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날은 참으로 섬뜩하게 잠에서 깼어요. 머리맡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몸에 소름이 끼쳐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한 여름날 비가 억수로 쏟아진 날, 반지하에서의 기억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싱크대에서 물이 역류해 잠을 자던 방안까지 들이친 거예요. 그리고 그 싱크대를 역류해 쏟아진 물은 어린 나의 머리에 제일 먼저 가닿았습니다.
이날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 지난 2022년 8월, 수도권에 폭우가 내리던 날이에요. SNS에서는 완전히 침수된 서초역 인근 제네시스 차량에 초탈한 기자의 사진이 밈이 되어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하철역이 침수되어 정차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장면들이 영상에 담겨 곳곳에 퍼졌습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곳곳이 수도권 폭우 현장 소식으로 가득했죠. 수많은 밈의 홍수 속에서 웃고 떠드는 댓글이 넘쳐났지만 차마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까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사망자와 실종자 소식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이른 새벽, 신림동 반지하에 들이친 빗물로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누운 채로 한참을 울었어요.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기후 우울증일까? 주변에 함께 기후운동을 하던 친구들도 그날이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고백해요. “내가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과연 우리가 이 재난을 넘어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울고, 가슴 아파하면서 말이죠.
그동안 기후위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찾아올 것이고, 재난은 불평등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염려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어요.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언니와 어린아이가 죽고 여성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아무리 와도 군말 없이 전기 작업을 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감전되어 죽었죠.
2030년, 자신이 다니는 학교와 인천공항이 잠길 것을 걱정하던 내 친구 재봉이는 지난 폭우에 집의 전기가 나가고, 아르바이트하는 샌드위치 집은 침수되었습니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던 날, 인터넷과 TV에서는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송선저수지가 붕괴 위험에 처했으니 저지대 주민은 즉시 대피하라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다름 아닌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것은 알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던 한 후배의 외할머니댁이 있던 마을이었어요. 재난은 이만치나 우리의 삶에 가까워졌습니다.
앞으로 기후재난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우리의 삶을 넘볼 것입니다. 2022년의 기후재난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면 지금의 기후재난은 또다시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 반지하는 왜 아직도 존재하느냐는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곳이 아니에요. 신림동 참사가 있고 난 이후로 정치권에서는 반지하를 다 없애겠다고 선언했어요. 서울시는 20년 안에 반지하를 없앨 것이라고 공언했죠.
서울지역 반지하는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과 산업화 시대의 복합적인 산물입니다. 1970년대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전시에 ‘벙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신축 주택은 반지하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처음 등장했어요. 1980년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거주 공간이 부족해지자 용적률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 보너스 공간으로 반지하의 법적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1980년대 후반엔 다세대·다가구 건물도 반지하를 허용하면서 더욱 많은 반지하 주택이 지어졌어요.
반지하는 1인 가구 등 우리 사회 취약계층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추위, 더위는 물론 수해 등 자연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어 거주민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죠. 하지만 당장에 반지하 퇴출은 비현실적입니다. 반지하가 사라지면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지하에 사는 이들에게는 당장 월 10만~20만 원의 주거비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현실의 높은 벽이에요.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신림동·응암동·사당동에선 같은 건물 반지하와 지상층의 월세가 최고 2.5배나 차이가 난다고 해요. 월세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추가 보증금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뚜렷한 이주 대책 없는 반지하 없애기는 오히려 고통을 가중할 뿐입니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반지하는 왜 아직도 존재하느냐는 물음을 바꿔 왜 아직도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반지하라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려야만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토록 잔인한 현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 천착해야 하죠.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적어도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 곁의 문제를 ‘내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그것이 개인의 성실함을 넘어 사회 어딘가의 잘못된 구조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일입니다.